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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안 미안하다

모기(1)

by silvergenuine

한여름밤의 꿈을 깨우는 불청객이 집 안에 들어왔다.


모기 물린 발목을 잠결에 발뒤꿈치로 긁다가

귓가를 스친 모기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기는 아기와 아이들을 더 선호한다.

아직 모기에 대한 면역체계가 덜 발달한 우리 아기가 모기에 물리면 빨간 자국이 며칠은 갈 것이다.

녀석의 주둥이가 꽃봄이를 공격하기 전에 어서 무찔러야겠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예전에는 방 안의 전등을 켜서 모기를 찾곤 했었는데

요즘은 휴대폰 손전등을 주로 이용한다.

조도가 강해서 이걸로 특정 구역을 비추면 빛과 그늘이 선명해서 모기를 찾아내는 것이 더 용이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을 비추면 모기는 가까운 곳에 착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침대 머리 맡 뒤켠에서 모기를 찾아냈다.

손전등 불빛을 모기에게 더 가까이 대며 반대편 손으로 일격을 가했다.

손바닥에 묻은 모기의 사체와 빨간 피를 보았다.

누구의 피일까?

남편은 자기 피라고 했다. 나도 물렸는데...모기에겐 우리가 뷔페였나보다. 다행히 아기는 물리지 않았다.


알을 낳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암모기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한다.

모기의 입장에서는 종족번식을 위한 생존수단인 것인데,

사람의 피 한 방울이면 모기의 배는 터질 듯이 부를 것인데,

우리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모기에게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

모기가 몰래 내 피를 훔친 것이 괘씸한 것이며,

그러려니 넘어가기에는 가려움이 날 너무 약 올린다.

두어시간 가렵기만 하다면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에 따라 무섭게 부어오르고 흡혈의 흔적이 오래오래 남기도 한다.

게다가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일본 뇌염 같은 모기 매개의 질병을 생각하면

우리 동네에 사는 모기까지 너무 미워지는 것이다.


Q: 지구상에서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동물은 무엇일까요?

A: 전 원래 뱀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정답이 모기라는 거 있죠? 듣고 보니 '아, 그렇겠네.' 싶었어요.

하지만 1위가 뱀이 아닌 모기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2위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연간' 이라는 것이 놀랍다 출처:gemini.google.com/


서로를 죽이는 인간들이 피 한 방물 훔쳐먹는 모기를 탓할 자격이 되나?

전쟁을 일으키고, 범죄를 저질러 남의 목숨을 함부로 짓밟는 인간들이 있다.

같은 인간 중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치욕이다.

그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엄연히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명체는 모기가 아닌가.


이 몸 저 몸 옮겨다니며 피를 훔쳐먹다가

"제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라며 과실치사를 주장해도 모기에 의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옮겨진 건 죄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의 모기가 그랬다고 해도

우리집 안방에 들어온 모기에게 연좌제를 물어야겠다.


피 한 방울을 훔치기 위해 모기는 목숨을 걸었다.

피 한 방울의 무게와 모기 한 목숨의 무게가 같은 걸까 생각해본다.

생명의 무게가 존재마다 달라도 되는 걸까?

각자의 절대적 가치는 다르지 않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

모기의 생명, 인류의 생명 다 생각해보아도 내가 모기를 미워한데는

사실 내 살갗의 가려움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모기와 나의 승부,

오늘 밤은 내가 이겼다.

미안하다, 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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