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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꿰매기

물건의 쓸모를 생각하다

by silvergenuine

빨래를 개며 식구들의 양말을 살핀다.

남편의 양말은 주로 복숭아뼈나 뒤꿈치 쪽에 구멍이 잘 나고

아들들의 양말은 발바닥의 볼록한 부분들에 구멍이 난다.

남편 양말의 구멍은 굳은살들로 인한 것이고,

아들들의 양말은 자주 신는 양말만 맨날 신다보니 실이 닳아서 시스루가 되다가 구멍이 뚫린 것이다.


보통 양말이 버려지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이다.

구멍이 났거나 한 짝이 없어졌거나. (목이 늘어났거나, 작아졌거나)


그러나 어릴 때부터 우리집에선 양말 한 짝이라도 쉽게 버려지지 못했다.

꿰매어 다시 신거나,

짝이 없으면 들에 일할 때 신는다고 모아두라고 하셨다.


이 생활습관 또한 내가 물려받은 유산이라

나 역시 웬만한 양말은 꿰매 신곤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단한 반짇고리를 가지고 양말을 꿰매거나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았다.

딱히 양말을 꿰매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서

학교에서 배운 홈질과 박음질, 휘갑치기 같은 방법을 적용해보며

가장 티 안나고 튼튼한 방식을 탐구했다.


결혼하고서도 이런 나의 방식을 타박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양말을 꿰매어 주었다.

아이들 또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구멍난 양말은 꿰매어 신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엄마, 나 이거 꿰매줘."

"이거 저번에도 꿰맨 거네. 여기도 곧 구멍 나겠고, 그만 버리면 안 될까?"

"아니야, 더 신을 거야. 꿰매줘."


식구가 늘며 꿰매어온 양말들도 늘다보니 이제 양말꿰매기도 제법 이골이 난다.

때로는 모아뒀다가 한 번에 재봉틀로 박아주기도 하는데 손바느질보다 튼튼하다.


얼마 전 릴스에서 '구멍난 양말 꿰매는 팁'을 보고 감탄을 했다.

'다음에 나도 이렇게 꿰매봐야지.'

생각하며 하나 있는 댓글을 열어보았다.

re: "그냥 하나 사 신으면 안 되나요?"

허락을 구하는 듯한 말투 너머에

'양말 꿰매기가 쉽지 않다, 구질구질하게 왜 꿰매 신냐, 하나 사면 그만인 것을.' 하는 생각들이 보였다.

양말을 꿰매는 사람과 그냥 버리고 사서 신는게 편하다는 사람.

우리 집에서 양말 몇 켤레 더 사 신는다 하여 경제적 타격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 다녀가는 물건이 그 쓸모를 최대한 다하고 가게 하는 것이 그 물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볼까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꿰매는 게 끝이 아니잖아, 마지막에 버릴 때 먼지라도 닦고 버리라고 잔소리하잖아."

"맞네, 베란다 샤시나 현관 바닥 같은 데 닦고 버려야지."

이런 습관은 어디서 왔는고 하니 이게 다 친정엄마발이다.

"난닝구 같은 거 그냥 버리지 말로 집청소할 때 창문틀이라도 한 번 닦고 버려래이."

라고 꿀팁처럼 당부하셨다.

그러고마 했는데, 한 번은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께 말씀드린 적이 있다.

"엄마가 런닝 셔츠 안 입는 걸로 창문틀 닦고 버리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어머님 표정이 근엄해지시더니

"귀한 사람 옷은 함부로 다루는 게 아니다."

라고 하셨다. 순간 당혹스러움에 입을 닫았다.

무엇에 마음이 다쳤을까? 친정엄마는 가족들 옷으로 먼지를 닦아 버리는 분이고, 시어머니는 가족들이 귀해 그 옷으로 차마 먼지를 닦을 수 없다는 분이시다. 시어머님 말씀대로라면 우리 친정 식구들이 귀한 사람이 아닌 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삶의 방식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다 결국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귀한 사람을 위했던 물건들이 마지막까지 쓸모있게 쓰이고 갈 수 있게 해주자.'

예압! 사람들은 모두 다 귀해. 물건들은 쓸모를 다해야해.


그런데 이러다보니 쓸모를 덜했다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집 안에 쌓인다.

글을 쓰다 집안을 둘러보니 물건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 다 짐이 될텐데, 이걸 다 어쩌나 싶다.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당근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에겐 방치되던 물건이 누군가에게 가서 쓸모를 되찾을 수 있으니. 기승전당근?


물질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내게 온 물건만큼은 그 쓸모를 제대로 다할 수 있게 해주며 살아가야겠다.


사족; 예전에는 양말을 살 때 디자인별로 한 켤레씩 고르곤 했는데 이제는 똑같은 디자인으로 몇 켤레씩 산다. 그래야 짝이 가출한 남은 양말 한 짝이 다른 짝을 구해 살 수 있더라. 이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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