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직접 싼 김밥은 소풍날에만 먹는 특별식이다. 어릴 때는 봄소풍, 가을 소풍, 운동회날이 엄마표 김밥을 먹는 날이었다.
내가 처음 제대로 된 김밥을 싸보게 된 것도 아들의 현장체험학습 때문이었다.
먹기에는 가장 간편한 음식이지만, 그 한 입의 김밥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 준비와 손품이 초보자에게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밥의 질기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각 재료의 간은 어느 정도를 해야하는지,
김은 가로로 놓는지, 세로로 놓는지 매번 헷갈리고, 밥알은 어디까지 깔며, 어떻게 해야 골고루 펼 수 있는지 어렵기만 하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써는 것도 어려워 썰어보고 가장 예쁜 것들만 골라서 도시락에 담아준다.
그래도 엄마 경력 13년에 김밥을 싸본 횟수가 10번을 넘어가자 제법 자신감이 붙어 한번은 아이들 현장학습날,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교무실에 김밥을 들고 간 적이 있다.
"오늘이 아들 현장학습이라 아침에 제가 김밥을 쌌답니다. 얼마 안 되지만 맛이나 한번 보세요."
"어머나,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다들 반색을 표하며 하나씩 집어드시니 금세 김밥 한 통이 동이 났다.
기교를 부린 김밥도 아니고 그냥 재료에 충실하고 어딘지 헐렁한 내 김밥을 맛있게 드셔주신 분들이 갑자기 본인들의 김밥부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마침 급식실 공사를 앞두고 도시락 급식을 하게 된 상황이라 교감선생님께서
"내가 김밥 정말 잘 싸는데 우리 급식실 공사 시작하면 교무실에서 김밥 한번 같이 해먹자."
하시자, 넉살좋은 부장님이
"제가 김밥을 정말 잘 썰어요. 싸는 건 몰라도 써는 건 진짜 잘 썬다고 집사람도 인정했어요."
하시고, 교무부장님도
"나도 한 김밥 싸. 다른 음식은 못 해도 김밥은 잘 싸. 우리 애들이 진짜 좋아해."
하시며 자부심을 드러내신다.
너도 나도 다음엔 자기가 싸오겠다는 걸 듣다보니, 이게 다 내 덕분인 것 같다.
"우와, 제 김밥 보시더니 다들 자신감이 올라오시나봐요. 이거 뭔가 갑자기 제 김밥이 부끄러워지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그 분들께 자신감과 용기를 드린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공부를 지도할 때도 엄마아빠가 잘 안다고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가끔은 문제가 어렵다며 헤매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아이가 신이 나서 문제에 덤벼들기도 한다. 아이의 자신감을 위해 일부러 한번씩 써볼만한 방법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부러가 아닐까봐 걱정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브런치글도 누군가에게 자신감을 드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걸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이게 에세이야, 일기야?
이 정도는 나도 쓰겠구만, 나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드신다면 자신감 있게 쓰기 시작하시길 권해드린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편안하고
부족한 나를 꺼내 서로 내어보일 수 있는 관계,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