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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등신 아가야, 사춘기 오빠야

by silvergenuine

13살, 11살 오빠와 1살 아기가 남매로 자라는 모습이 흥미롭다. 보통 동생의 탄생은 경쟁자의 등장으로 여겨지지만, 이 정도 나이차는 경쟁이 아니라 그저 보살핌의 관계인 걸 볼 수 있다.

비록 기저귀는 못 갈겠다고 하지만, 귀여워하고 보호해주는 것만으로도 오빠들의 역할은 충분하다.

한 집안의 막내는 세월이 흘러 사십, 오십이 넘어도 언니오빠에게는 마냥 어려보인다길래 우리 아들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너희는 꽃봄이가 40살이 넘어도 귀여워해줄 거야?"

"당연하지."

정말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좋겠, 꽃봄아.


갓 80일이 넘은 아가야는 이제 4등신에 다다랐고, 살들이 연두부같아서 조심조심 대해주어야 한다.

본인은 사춘기가 아니라고 하는, 사춘기가 엿보이는 오빠야는 잘못하면 불꽃이 튈까봐 역시 조심히 대해야 한다. 두 아이를 생각하며 얄궂게 시를 써보았다.


- 사등신 아가야 & 사춘기 오빠야 - 엄마 作


사등신 아가야가 엄마 무릎에 앉아

눈을 빤히 보며 기분좋게 웃다가

무심한 듯 용을 쓰며

뿌르르르 응가를 한다.

응가의 진동이 내 몸에 전해진다.

"우와! 응가해요? 우리 아기 응가 잘하네!"


사춘기 오빠야가 화장실에 가면

문을 함부로 열면 안 된다.

그만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할 때.

때로는 그만의 화캉스를 내버려두어야 할 때.


사등신 아가야는 무엇을 입혀줘도

자기가 뭘 입은지도 모른 채 마냥 이쁘지요.


사춘기 오빠야는 이제 엄마 입으라는 건

"왜애! 이거 이상해! 불편해! 아, 그냥 내가 알아서 입을게!"

"아, 그래라, 그래!"


사등신 아가야는 세상 아는 음식이라곤

엄마젖 뿐.

온가족 식사 시간,

자기만 못 먹어도 아무렇지 않아.

냄새도 촉감도 아직은 다 귀찮은가봐.


사춘기 오빠야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음식도 많아,

부엌을 기웃대며

"오늘 아침 뭐야?"

"오늘 저녁 뭐야?"

좋아하는 음식에 착한 아들이 되고,

싫어하는 음식엔 싫은 티가 나서 신경이 쓰여.

그래도 자기몫은 다 먹어줘서 참 고마워!

벌써 아빠보다 많이 먹으니,

아빠보다 키도 더 크렴.


이제 아가야는 눈 마주치면

옹알옹알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오빠야들은 개콘 '대화가 필요해'

"밥 묵자" 대사가 딱 어울린다.


사등신 아가야는 엄마품이 자기 세상,

엄마 품에 자고, 엄마 품에 먹고, 놀고.

사춘기 오빠야는 온동네가 자기 구역.

그리고 점점 더 멀리 나아가겠지.

엄마가 모르는 너의 세계가 커지고 있어.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도 사등신 아기였던 나의 아이,

사등신 아기도 세월 흘러 사춘기를 지날 나의 아이.

너희의 시간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부모의 시간은 미래와 추억을 동시에 오간단다.

그리고 흘러가버릴 지금을 이미 그리워해.


To. 큰 아들

"사춘기네, 사춘기."라고 해서 사춘기가 욕인 줄 아는 아들아,

사실 사춘기는 좋은 때야,

네가 너이고 싶은 네 모습을 찾아서 잘 지나야 해.

생각할 思, 봄 春.

인생의 봄을 생각하기 시작한 너이기에

네 인생의 봄은 네가 독립된 사람으로서 이끌어갈 네 삶의 시작점인 거지.

봄에 어울리게 연애를 생각하고

그러기에 이성이 눈에 들어오고

자기 외모와 옷이 돌아봐지고

남들의 평판, 남자 사이의 서열에도 신경쓰지.

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되,

부러운 친구를 보면 깎아내리려 하기 보다는 인정해주고

같이 높아지려 했으면 좋겠어.

사실 엄마는 너만할 때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너무 큰 걸 바라는 거라고 아빠가 뭐라 그래.


때마침 찾아온 아가야 동생 땜에 엄마의 관심을 덜 받게 되었는데, 그게 서운하지는 않을런지.

그게 맘에 걸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설핏 지켜보면 왜 잔소리할 것부터 눈에 보이는지.

이럴꺼면 간섭보다야 무심한 게 나으려나.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시간 때문에

우리 사춘기 오빠야는 오히려 더 홀가분하게 성장하려나.

그래도 네가 서운한 거 있으면 말을 해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서로의 희망사항이고

엄마는 사춘기 남자 마음을 잘 몰라서

네가 말해주면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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