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정말 대단해
50일 넘은 꽃봄이가 처음으로 외가댁에 다녀왔다.
친정에 다녀올 때마다 엄마가 길러낸 먹거리들을 한가득 싣고 온다.
자리를 찾아 정리하고, 상하기 전에 챙겨먹기 위해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가져온 나물을 손질하기 위해 식탁 위에 나물 봉지를 끌렀다.
그때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게 딱 눈에 띄었다.
"앗, 꽃봄이 모기 물리면 안 되는데! 빨리 잡아야 돼!"
행여나 놓칠세라 눈을 떼지 않고 모기를 좇았지만
마치 허공에 구멍을 열어 빨려 들어간 듯 모기는 사라졌다.
그때 작은 아들이 다가왔다.
"분명히 모기가 있었는데 엄마 눈에는 이제 안 보여. 너 동체 시력 좋잖아, 모기 좀 찾아줘."
"알았어. 어, 여깄다!"
아들이 가리킨 봉지 위에 뭔가 앉아있었는데,
모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눈에 띄게 앉아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색깔도 까맣기보다는 약간 누런색이고
덩치도 모기보다는 큰 것 같아서 하루살이인가 싶었다.
섣불리 때려잡기 전에 살며시 다가가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텃밭에서 따라온 아기사마귀였다.
"앗, 아기 사마귀잖아. 이게 아까 날았나? 어쨌든 안 죽이길 잘했다."
아기 사마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 여기 모기! 모기!"
작은 아들이 다시 날아다니는 모기를 발견하였다.
"역시 모기가 있었어! 오케이! 내가 잡겠어!"
틈을 주지 않고 손뼉을 쳐서 모기를 때려잡았다.
순간 '잡은 모기를 사마귀에게 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기 사마귀한테 이 모기 주면 먹으려나? 맨손으로는 못 주겠고...아들, 핀셋 좀 가지고 와줄래?"
아이가 핀셋을 갖다 주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에이, 죽은 건 안 먹을 걸?"하며 김을 뺐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죽은 모기를 사마귀 앞에 가까이 들이대보았다.
그러자 아기 사마귀가 흠칫 놀라며 앞발을 움츠렸다.
남편이 "거봐라, 역시 안 먹네."라고 말하는 순간,
아기 사마귀가 다시 앞발을 뻗어 모기를 잽싸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우리가 지켜보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잡은 모기를 앞발로 꼭 잡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먹네! 다들 와서 봐봐. 사마귀가 모기를 진짜 먹고 있어!"
큰 아들도 와서 온 가족이 둘러싸고 그 모습을 관찰했다.
"사마귀야, 모기를 잡아줘서 고마워."
사마귀가 익충이라고 배운 아이들이 아기 사마귀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얘가 잡은 게 아니고 잡아서 준건데?"
"그래도 이것 말고도 계속 잡아주잖아."
"그래, 맞다. 우리 얘도 잘 살려주자."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엄지손톱만한 아기 사마귀가 모기 한 마리를 먹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분명 열심히 먹고 있는데, 모기가 줄어드는 느낌이 안 들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엄마도 없이 살다가 여기 도시까지 따라오다니.
이 모기 한 마리를 먹기 전까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안쓰럽고 대견했다.
갓난아기를 기르고 있어서 그런걸까?
우리 아기에게 하는 말투가 절로 나왔다.
"오구, 배고팠쪄요? 천천히 많이 먹어. 먹고 쑥쑥 자라라."
우리가 사마귀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보게 될 줄이야.
한번 키워보자는 내 말에 남편이 그건 아니라고 했다. 네에..
아기 사마귀가 가을까지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라며 남편이 집 앞 화단에 보내주었다.
지금은 거미에게도 잡아먹히는 약자지만, 버티고 버텨 생존하면
언젠가 거미보다 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할테지.
어린 왕자의 장미꽃처럼
수많은 사마귀 중에 특별한 한 사마귀가 된 고 녀석, 부디 살아남아라.
어릴 때 시골에서 메뚜기, 잠자리는 잡고 놀았어도
사마귀는 늘 무서운 대상이었다.
어른들이 "사마귀 만지면 몸에 사마귀 난다." 고 하며 하도 겁을 줘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조사해보니
-곤충 사마귀를 만진다고 피부에 사마귀가 나지 않는다.
-피부에 난 사마귀는 유두종 바이러스 질환으로써, 접촉하면 사마귀가 옮을 수 있다.
즉, 곤충 사마귀와 피부에 난 사마귀는 연관이 없는데
동음이의어라서 그런지 옛날 내가 알던 사람들은 다들 헷갈려했던 부분이다.
이제는 사마귀에 대해 호의적이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악수할 사이는 아니고.
가을, 엄마 사마귀가 온몸으로 지어준 알집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수백마리가 태어나
가족도 동료도 없이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외로운 곤충.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더라도
너의 한살이를 충실하게 살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