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라인의 규칙
해마다 여름이면 경북 봉화에 있는 청옥산 자연휴양림을 찾는다. 한반도가 무더위로 끓어오를 때에도 이 곳은 30도를 넘지 않고 밤이면 서늘한 한기까지 느낄 수 있어 신선놀음에 빠진 듯 잠시간의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행정규역상 봉화군 소속이지만 정작 봉화읍보다 태백시에 더 가까워서 휴양림에 올 때면 태백에 있는 놀거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번 여행에는 같이 간 가족과 함께 초등 자녀들을 데리고 '태백체험공원'이라는 곳에 방문했다. 폐광된 탄광사무소 건물을 활용해서 옛 광부들의 일상을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폐쇄된 갱도의 입구 구간도 직접 들어가볼 수 있게 조성해놓았다. 갱도 앞에만 서있어도 동굴 같은 시원한 바람이 느껴져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감탄하며 좋아했다.
이 건물 바로 옆에는 태백 '창의놀이터'라는 곳이 있는데 일반 놀이터보다 다소 업그레이드된 놀이기구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놀았다. 특히 제법 긴 짚라인이 설치돼 있었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씩 더 타고 싶어할 만큼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이 먼저 신나게 달려가서 짚라인을 타고 어른들은 천천히 뒤따라 갔는데, 그 잠깐의 틈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짚라인을 타고 온 아이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이미 그 곳에는 6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혼자 짚라인을 타고 있었다.
이런 수동 짚라인을 타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놀이에는 나름의 '배려의 규칙'이 있다. 먼저 탄 사람이 다음 사람을 위해 기구를 출발 지점까지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런 규칙을 몰랐던 듯 하다. 자기가 다시 타려고 짚라인을 끌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는데 방금 온 형아가 타겠다고 대기하고 있으니 기구을 건네주지 않고 그냥 놓아버렸다.
"어, 야! 그냥 이리 줘!"
앞사람에게 건네 받는 것에 익숙한 우리 둘째가 당황해서 다소 큰소리를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왜 남의 애한테 소리를 질러! 탈꺼면 네가 가져와서 타! 아들도 다른 사람 타게 그만 타고 가자"
하고는 자기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아이들만 있는 상황에서 아주머니가 소리를 치니 아이들은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투덜거린 모양이다.
"아, 너무해. 짚라인의 규칙을 모르네."
"저 아줌마 너무 싫어. 속상해."
일행의 딸아이는 울컥한 마음에 짚라인도 더 타지 않고 곧장 엄마에게 와서 상황을 전달하며 속상함을 호소했다.
아이들의 원성을 전해들으며 그 상황에 이 쪽 어른들이 없었던 게 다행일까 생각해보았다. 아이들 틈에 어른 한 명이 끼어들면 얼마든지 독재자가 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자기들 입장을 제대로 항변도 못해보고 숨죽여 놀고 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이 아이들이 아는 규칙이 이런 거라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큰 소리로 말한 건 죄송해요. 그 쪽 아드님도 줄 서면 먼저 탄 아이가 기구를 끌어다 줄 거에요. 같이 해보면 좋겠어요."
라고 개입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상황에서 과연 곱게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 확신할 수 없다.
뒤늦게 아이들 원성만 전해들었으니 공감을 표현하고 아이들 마음이나 달랬다.
"그 애는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그 엄마가 너무하네. 그런 식이면 오히려 아이한테 안 좋은데."
"어쩌면 짚라인을 처음 타봐서 이런 질서를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다음에도 계속 그러면 안 되니까 누가 좀 알려주고 규칙을 배우면 좋을텐데. "
그 쪽 입장에서는 "그게 누가 정한 규칙이냐, 탈 사람이 갖다가 타면 되는 거지," 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단지 놀이의 규칙을 넘어 사람 사이의 예의와 어른의 어른다움에 관한 문제다.
짚라인을 타면서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배워야 했다.
그 아이는 자신에게 소리친 형을 보며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더 큰 소리로 대응하는 엄마를 보며 어쩌면 아이는 부끄럽지 않았을까? 재미있게 노는 형, 누나들 틈에서 질서를 익히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어울림 대신 오해만 남은 그들과 우리 사이가 안타깝다.
낯선 형아로부터 아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날을 세운 엄마, 이렇게 하셨다면 어땠을까요?
-------필자의 상상-------
"너 왜 우리 애한테 소리질렀어?"
"원래 먼저 탄 사람이 다음 사람한테 갖다주는 거에요."
"아, 너희는 그렇게 타는구나. 얘가 몰라서 그랬어. 이해해줘. 아들, 귀찮겠지만 형한테 짚라인 다시 갖다줄래? 그리고 너도 뒤에 줄 서보자"
그랬다면 우리 아이가 짚라인을 탄 후 그 아이에게 다시 끌어다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작은 수고가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를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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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뒤에도 아이들은 그 모자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 큰 아들은 이 소재를 브런치에 꼭 써달라고 했다. 제목은 '짚라인의 빌런'으로 지어달라며...
아이들은 불편했고 나는 안타까웠다. 이 경험으로 짚라인에 매달린 배려와 존중의 미학이 삶에 스며들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여 애꿎은 빌런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 아래 내용의 안내문을 기구 옆에 비치하면 좋을 것 같다.
<1안>배려를 심은 규칙: 먼저 탄 사람은 다음 이용자를 위해 출발 지점까지 끌어다주세요.
<2안>합리적인 규칙: 짚라인이 저절로 멈춰서는 지점에서 대기하세요. 탈 사람이 출발 지점까지 가져 가서 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