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고마워.
집이 아파트 1층이다보니 베란다 창을 통해 상당히 다양한 생명체들이 경계를 넘나든다.
공벌레는 익숙한 손님이고, 비오는 날에는 민달팽이와 지렁이도 한 번씩 찾아온다.
작은 지렁이를 미니 빗자루로 잘 포획해서 화분에 넣어주면 그 화분의 식물이 더 잘 자라는 듯하다.
민달팽이는 아무래도 정이 가지 않아 "우리집에 왜 자꾸 들어오니."하며 창 밖으로 휙 튕겨내버린다.
거미는 뭐, 이젠 너무 익숙하다.
어느 오후 거실 바닥에 왕거미가 나타났다. 평소 보던 거미보다 크고 재빠른 모습에 휴지로 포획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 남편에게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남편은 혹시나 거미가 다칠까봐 망설였지만,
"아니야, 내가 청소기로 벌레 잡아봤는데 안 죽어. 걱정말고 해봐."
라는 나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남편이 청소기로 왕거미를 빨아들여 포획에 성공했다. 투명한 먼지통 안에서 당황한 듯 우왕좌왕하는 거미를 보니 건강에는 지장이 없구나 안심이 되었다. 앞 베란다 화단에다 먼지통을 열어 거미를 놓아주니 풀섶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잘 갔어. 집 밖에 네 먹잇감이 더 많아. 특히 모기랑 파리 많이 잡아먹어라.'
고등학교 시절 교실, 기숙사, 독서실 등 장소를 불문하고 거미를 잡아주던 친구가 있었다. 거미만 나타나면 우리는 당연한 듯 그 친구를 불렀고, 그 친구는 휴지를 뽑아들고 "어디? 어디?"하며 매번 반갑게 거미를 잡아 소중하게 창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허공에 키스를 날리며.
그 때는 그 행동이 참 낯설고 특이해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이미 불교의 불살생, 생명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명존중을 실천한 것이다.
아파트 7층에 사는 이웃은 베란다 밖 거미줄이 지저분해보여 걷었더니 갑자기 집안에 모기가 많아졌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거미줄이 모기를 막아줬던 것임을 깨닫고 그 뒤로는 거미줄을 적당히 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베란다 밖에도 거미줄이 있는데 그 덕분에 모기 걱정이 덜한 것 같다.
이제는 거미 몇 마리와 적당히 공생하는 삶이 익숙하다. 부엌 싱크대 곁에 작디작은 아기거미가 초파리를 노리고 거미줄을 쳐놓은 걸 보고는 "그래, 초파리 잡아먹고 열심히 자라라."하고 고이 두었다.
어제밤에는 뒷베란다에 세탁기를 돌리러 나가던 남편이 나를 불렀다. 요며칠 뒷베란다에 갈 때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왕거미 하나가 몸을 내밀고 있다가 남편이 지나가면 샥 숨는다며, 마침 몸을 반쯤 내밀고 있던 까만 거미가 다시 숨을새라 조심스레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매일 같은 자리에서 빼꼼히 등장한다는 사실이 무해하고 귀엽게 느껴져 우리는 그 거미를 '아라고그' 라 부르며 반려 거미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종종 생김새만으로 거미를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거미는 단순히 해충을 잡아주는 익충을 넘어 여러 문화권에서 행운과 부, 수호, 지혜와 창조성을 상징하며 인간과 함께 살아온 존재다.
조용한 경비원으로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서 거미가 우리 삶에 오래 공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