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물음에 얼굴만 바라보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왜 말을 안 하냐며 한마디 뒤따라 들어오지만 닫히는 방문에 막혀버린다. 그냥 놀다 왔으면 놀다 왔다, 친구 얼굴 보고 왔다, 이렇게 대답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나의 대답에 이어지는 외침을 들을.
나에 대해서 깊숙이 묻기 시작하면 보통 두 가지로 대한다.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건성으로
“아 그거 별거 아니야.”
라는 식으로 답을 회피하고, 어색한 사람들에게는 애써 웃으며 (그러나 얼굴을 한껏 일그러져 있는)
“그러게 말이죠… 저도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게…”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이유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반응이 두려워서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어머니가 내게 어디 다녀왔냐며 묻는 것은 사실 여자친구를 보러 다녀온 것을 알고 묻는 말이다. 아들의 사생활이지만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게 굉장히 불편했다. 이유는 어머니께서 여자친구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적은 없었다. 단지 나의 생각일 뿐. 나야말로 스스로 좋지 않은 망상으로 판단 내리고 상대방과의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2. 여자친구 와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카페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가 여자친구가 화장실이라도 갈 적이면 나 홀로 휴대폰을 보게 된다. 인터넷 뉴스나 짧은 유튜브 영상이라든가 하는 시답잖은 내용들. 그러다가 그녀가 돌아오면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카페 책상에 올린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며 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얼버무린다. 여지없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사실 숨길 이유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숨겨둔 다른 여자와 몰래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출처를 알 수 없는 밈들로 가득 찬 별거 아닌 글 조각 일 뿐인데. 아, 쓸모없는 걸 봐서 스스로도 창피해 서였을까? “이런 것 좀 보지 마! 수준 떨어져.” 라며 일침을 들을까 봐?
그건 아닌 거 같다. 그 정도로 평소에 엄격한 잣대로 살진 않아서. 그런데 만약 그런 망상을 해버려서 숨기게 된 거라면? 모르겠다. 이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모종의 이유가 있다면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습관인 것 같다.
3. 어린아이가 그림 그리기든 수학문제를 풀든 뭔가 과제를 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누군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혹자는 집중하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이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냐며 피드백을 바랄지도. 하지만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저 숨기기 바빴다. 나의 ‘꼴’을 보고 비난할까 봐. 기억을 더듬어봐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욕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나는 별로야, 틀린 걸 거야.’ 라며 일관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같은 꽤나 어렸을 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몸이 기억하게 되었다. 실제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 팔은 이미 내 것을 감추기 바빴었으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떤 심리학 책에서는 부모로부터 어렸을 때 인정받기 못해 생겨난 불안정 애착의 형태라 말했다. 그래서 매사에 남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것 마냥. 이것이 나름 긍정적으로 발전한다면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 ‘눈치’ 보는 삶을 산다고 피로해질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양육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몇 번의 대화를 시도는 해봤지만, 그 옛날 일을 다 떠올리시지도 못하며 (어쩌면 말하지 않는 것일지도) 해도 이렇게 사지육신 멀쩡하게 키운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말씀하시니 더 이상 이야기는 힘들어 보였다.
어쨌든 이런 내가 되어버린 건 사실이다. 눈치만 본다고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게 돼 버린, 삐걱대는 인간이 말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땅을 쳐봤 자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부터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자.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걱정하는 나부터 인정하는 거다. 남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두려워하는 게 나인데 어떻게 하냐며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힘들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고민하는 거다. 그것은 바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도 나는 변함없다는 것을 아는 것. 실제로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남들이 날 욕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비난을 한다고 거기에 동조되어 내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실제 나는 원래부터 가치가 없던 놈이었던 거다. 반대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일뿐이라고 여긴다면 옆에서 이야기하는 건 전부 잠시 스쳐가는 바람소리일 뿐.
써 놓고 보니 힘들어하고 있는 날 배려하지 않는 글 같긴 하다. 그래도 어때, 내가 날 위해서 하는 건데 남이 말해주는 거보다는 낫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