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땅은 바람처럼 묵직하다. 서쪽으로는 자그로스 산맥이 천천히 들썩이며 이 나라의 척추가 되고, 북쪽으로는 엘부르즈 산맥이 한쪽 어깨처럼 솟아 있어 카스피해와 고원을 나눈다. 고원의 공기는 건조하고 느리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스며 있다. 문명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제국이 울고 웃던 길 위에서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간다. 이란은 단순한 국토가 아니라, 산과 사막과 바다가 서로 기대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운명이다.
이란은 높은 평지다. 해발 천 미터 가까운 고원이 국토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고원은 적에게는 불편한 땅이고, 이곳 사람들에게는 방패와 같은 존재다. 기원전 550년, 현재 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키루스 대왕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개 대륙에 걸쳐 지배했던 아케메네스 제국을 세웠을 때 사람들이 놀란 이유도 바로 이 고원의 엄청난 지리적 탄력 때문이었다.
큰 강이 없어도, 해안이 넓지 않아도, 산의 골짜기와 길게 이어진 사막의 공간은 그들에게 이동과 방어의 두 가지 자산을 동시에 준 것이다. 페르시아군은 산의 경사면을 타고 급속히 이동했고, 사막은 적의 보급을 저지하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곤 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덕분에 그들은 소아시아(터키 영토의 아나톨리아 반도), 메소포타미아(서아시아의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주변 지역), 이집트까지 연결하는 제국을 펼쳤다.
그러나 고원의 중심성은 영광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동과 서 사이에 놓였다는 사실은 곧 누구라도 이 땅을 지나가려 한다는 뜻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랬고, 아랍 세력이 그랬고, 몽골이 그랬다. 그들은 모두 페르시아를 정복했다고 믿었지만, 고원 전체를 완전히 손에 넣은 제국은 없었다. 산과 사막은 쉽게 항복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 땅의 기질을 닮아 오래 버텼다.
1. 호르무즈 해협이 만든 힘
이란의 남쪽 끝자락에 페르시아만이 부드럽게 누워 있다. 그러나 그 온화한 수면 아래엔 세계가 긴장하는 좁은 물목이 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 세계 원유의 3분의 1이 이 좁은 물길을 통과한다.
이란은 이 해협의 북쪽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이란은 대형 해군이 없어도 스스로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1980년 시작된 이란-이라크전 당시, 두 나라는 서로의 유조선을 공격하며 바다를 전장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유조선 전쟁’이다. 그 혼란 속에서 이란은 학습했다. 바다에서 대형 함선보다 빠른 고속정과 미사일, 기뢰, 드론이 더 위협적이라는 것. 그리고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세계의 원유 가격을 흔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날 이란의 해군은 산 아래에 숨어 있는 고속정과 지하 미사일 기지로 구성된다. 이란의 바다는 전 세계가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공간이 되었다. 바다는 이란에게 물길이 아니라, 외교와 전쟁을 동시에 움직이는 닻과 같은 것이다.
2. 산맥, 이란을 지켜낸 느린 방패
이란을 지키는 것은 군대보다 산이다. 서쪽의 자그로스 산맥은 길게 펼쳐져 이라크와의 경계를 이루며 오래전부터 천연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높은 봉우리와 가파른 협곡은 침입자를 늦추고, 길을 잃게 하고, 지치게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을 하며 고전했던 것도 이 때문이고, 13세기 몽골군이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면서도 고원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세기 러시아가 남하할 때 알보르즈 산맥이 그 속도를 늦춘 것 역시 이 지형의 연속성에 있다. 산맥은 방패였지만 동시에 제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 강한 중앙집권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산이 많아 도시 간 통합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란의 역사에서 왕조들은 강력한 권위를 갖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지리는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제도를 만들었다.
3. 사막과 오아시스의 문명이 숨 쉬는 방식
이란에는 나일강도 없고, 티그리스강 같은 큰 물줄기도 없다. 그래서 이란 문명의 핵심은 강가가 아니라 오아시스였다. 사막 아래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고대의 기술, 카나트(Kanat)는 도시를 만들고, 왕조를 유지시키고, 군대를 움직였다.
페르시아 고대 왕들은 이 카나트를 따라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들을 오래된 도로—‘왕의 길’—로 연결했다. 이 고대 도로망은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고원을 잇는 통로였고, 그 길을 통해 병사와 상인, 종교와 문화가 흘러 다녔다. 그래서 이란은 큰 강이 없는 나라임에도 인간의 길을 가장 정교하게 사용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길은 지금도 살아 있다. 오늘날 이란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러시아의 남하 전략에서 핵심 회랑이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막과 오아시스는 이란을 고립시키지도 않았고, 완전히 열어놓지도 않았다. 그저 스스로의 속도로 문명과 외부를 잇는 공간을 제공했다.
4. 제재 속에서 스스로 만든 공중전
이란의 공군은 오래전부터 강하지 않았다. 제재와 고립으로 새 전투기를 들여오기 어렵고, 산악 지형 덕분에 큰 활주로를 짓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은 하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운 길을 찾았다.
미사일과 드론. 1980년대 전쟁의 혹독한 경험은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대규모 공군이 아니라, 값싸고 기습적인 무기들로 영공과 주변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2020년, 미국이 이란의 군사 지도자 솔레이마니를 제거하자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정확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과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도 “우리는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공격이었다.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란의 샤헤드-136 드론이 실전 투입되자 세계 강대국은 이란의 기술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란은 제재 속에서 독자적 현대전을 구축한 셈이다. 그들의 하늘은 더 이상 빈 공간이 아니라, 자주성과 억지력의 공간이다.
5. 지리가 만든 종교 신념
*시아파는 이란의 영혼이다. 이슬람 초기에 박해받던 시아파는 내륙 깊은 고원과 산악지대에서 살아남았고,
그 생존의 패턴은 이란의 역사를 바꾸었다. 1501년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시아파는 국교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종교 변경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과 다른 정체성을 확립하는 선택이었다. 서쪽의 오스만 제국이 수니파였기에, 두 제국은 수 세기 동안 충돌했다.
이 전쟁들은 종교 갈등뿐 아니라, 서로 다른 지리·경제·군사 모델이 부딪힌 결과였다. 오늘날 이란의 군사 전략, 대외정책, 정치 구조의 절반 이상은 이 종교적 정체성 위에서 움직인다. 지리가 종교를 지켰고, 종교는 국가를 지키는 기둥이 되었다.
*시아파는 이슬람교의 두 가지 주요 종파 중 하나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수니파와 분리되었습니다. '시아파'라는 이름은 '알리의 무리(시아트 알리)’
라는 의미에서 유래
6. 강대국의 사이, 그러나 중심을 추구하는 외교
이란은 언제나 강대국들 사이에 있었다. 러시아와 영국, 미국과 소련, 사우디와 이스라엘. 그러나 이란은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대지 않았다. 대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란이 유라시아-중동을 잇는 고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사막과 산, 바다를 모두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붙잡고 있는 나라는 단 하나다. 그래서 이란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동 전략의 모든 축이 이란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미국의 제재도, 중국의 중동 진출도, 러시아의 협력도 모두 이란을 거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 지리 때문에 약해 보이지만, 바로 그 지리 때문에 끝내 무너지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이 이란이다.
7. 산이 만든 고립, 바다가 만든 기회, 기술이 만든 미래의 길
이란의 미래 전략은 크게 세 방향으로 흐른다. 첫 번째는 비대칭 전력의 확장이다. 드론, 탄도미사일, 지하 기지 등 제재 속에서도 유지 가능한 군사 체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란은 공군을 서방처럼 키울 수 없지만,
“싸울 수 있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두 번째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전략적 영향력 유지 이 해협은 이란에게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 수단이다. 해협을 통한 억지력은 앞으로도 이란 외교의 핵심 축이다. 세 번째는 고원 경제의 자립과 새로운 지역 질서 참여
젊은 인구, 광물 자원, 지리적 위치는 이란의 잠재력이다. 중국·러시아와의 협력, 아라비아 국가들과의 관계 재정립은 이란이 향후 새로운 중동 질서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지리는 이란을 흔들었지만, 끝내 지켜냈다 이란의 바람은 산을 넘어오며 오래된 전쟁의 냄새를 걷어낸다. 사막의 모래는 과거의 발걸음을 덮어버리고, 페르시아만의 물결은 늘 새로운 아침처럼 반짝인다. 이 땅은 외세의 침략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산은 무너진 적이 없었고, 사막은 지친 적이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돌아올 길을 열어두었다. 그래서 이란은 말한다. “우리는 단지 견디는 나라가 아니라, 지리 위에서 미래를 다시 쓰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