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예민한 나, 기분에 예민한 너
나는 하늘을 자주 보는 편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며 어제의 하늘을 그리워하고 내일의 하늘에 설렌다. 그런 하늘의 색과 무늬를 만들어내는 계절에, 날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바람에 담긴 물기의 정도에 따라 숨 들이마시는 양이 달라지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과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닫는다. 푸른 하늘에 기운을 내고 흐린 하늘에 어두워진다. 매일이 조금씩 다른 하늘에 기분이 널뛴다. 어릴 땐 이런 변화무쌍한 나를 재밌어 하고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고 나니 이런 민감함이 참 번거롭게 느껴진다.
올해는 유독 가을이 길다. 지난해 초록 그대로 바닥으로 져버렸던 은행잎들은 금빛으로 물들어 쉬이 떨어지지도 않고 햇빛에 반짝인다. 그동안 그저 나무구나 했던 나무들이 어느 그루 하나 예외 없이 온갖 가을색을 담아내며 존재감을 자랑한다. 눈에 닿는 가을 풍경 모두가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답고 강렬해서 쉬이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을에 미친 자, 가친자가 되어 마음 같아서는 가는 가을을 붙잡고 굽이굽이 접어 놓고 싶지만 도리가 없다. 그래서 가는 가을날을 그저 눈에 열심히 담고만 있었는데 오늘밤 비가 내렸다. 마음이 철렁했다.
갑자기 흐려진 하늘에서 쏟아진 비처럼 몸도 마음도 주저앉는 때가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누구도 선사하지 못하는 반짝이는 순간을 자주 선물하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피로와 고단함을 준다. 그런 날이면 하루가 너무 길다는 소리를 입에 달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저녁 즈음 되면 여지없이 집안에 폭탄이 떨어진다. 밥 먹으라는 소리를 10번 넘게 해서,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서, 찡얼거리는 소리로 말을 해서 등등 폭탄의 트리거는 각양각색이다.
많은 엄마들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아이에게 그 폭탄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 그렇다. 육아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명상을 한다. 대부분은 이미 터지고 난 폭탄의 사후 약방문이지만 말이다. 실전은 책처럼, 강의처럼 잘 되질 않는다. 하루에도 아이에게 새롭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데, 그 중에서도 행동과 말을 교정하는 훈육의 내용은 상황적으로 좋은 말로 하기가 영 쉽지 않다. 나의 감정을 배제하고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을 사실 중심으로 전달 하라는데, 나는 감정을 배제하는 그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랬다. 하루 종일 외출하고 오후에 집에 들어오며 낮잠을 한 숨도 자지 않는 둘째 아이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첫째 아이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아이에게 차가운 말들이 몇 번 나가고 난 뒤였다. 겨우 아이들을 씻기고 잠옷까지 입혀 놓은 상태에서 첫째 아이는 클레이를 가지고 요리 놀이를 하겠다고 졸랐다. 오늘은 안된다고 거절하니 아이는 큰 소리로 울며 조르기 시작한다. 평소 뭘 조르는 아이가 아닌데 동생이 생긴 이후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드러누워 우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아 고치려고 애쓰는 중이었기에, 우는 아이를 붙잡아 세우고 클레이 놀이가 안되는 백한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나의 감정을 배제하고.
그런데 스스로 말하면서도 느껴지는 것이 내가 차가운 머리로 내뱉는 이 말들이 너무 차갑다는 것이었다. 고작 여섯 살이 첫째를 엄마나 동생을 생각하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모는 것 같은 말들에 문득 겁이 났다. 한발 물러서 클레이 놀이를 하게 해주기로 했다. 따뜻함이 1도 없는 말로 아이를 더 몰아세우면 안 될 것 같아서 였다. 아이 방에 클레이와 도구들을 넣어주고 나왔다.
“재밌게 놀아!”
내가 말했지만 그 말의 온도도 꽤나 낮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어우, 천사네.” 했고 아이는 뭣도 모르고 신이 나서 놀이를 시작했다. 틈이 생겨 잠시 아이와 거리를 두고 방에 혼자 들어와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방으로 찾아왔다. 아까 훈육의 시간이 찜찜하게 끝나버린 여운이 남아 나는 아이에게 여전히 싸늘한 얼굴인데 신나서 나를 찾아온 아이의 얼굴은 내 표정을 마주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할말 있어?”
아이의 웃는 얼굴이 당황한 표정으로 바뀐 것을 보면서도 말이 따뜻하게 나오질 않았다. 아이는 충분히 그 온도를 느꼈을 것이다. 나만큼 감정에 예민한 아이니까. 그럼에도 무언가 뻘쭘함을 딛고 나에게 말을 했다.
“사용하기에 어려운 도구가 있어. 엄마가 도와줘.”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이가 짠한 마음이 들어 한숨을 푹 쉬고는 아이 손을 잡고 방으로 가보았다. 방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클레이를 던져 주고 그 방에서 나왔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다. 핑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맞춤으로 맞추어 준 책상과 의자 곳곳에 빨간 클레이가 짓이겨져 있었다. 후우, 하고 큰 숨을 내쉬고 이를 앙 다문채로 아이에게 도구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르니끄…엄마가 클레이 놀이 나중에 하자고 했즈느…”
아이는 눈치를 한번 쓱 보더니, 다정하고 온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오늘 클레이 꺼내 줘서 고마워.”
순간 마음 속 차가운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놀이터에 가자는 데 둘째 아이를 재워야 한다며 방문을 닫았던 순간, 요거트볼을 나누어 먹으며 아이가 혀만 대고 내려놓는 숟가락을 탁 치우며 같이 먹는 음식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던 순간, 같이 식당놀이를 하자며 열심히 주문을 받고 놀이를 하던 아이가 둘째 아이 목욕을 시키느라 놀이가 지연되자 혼자 재미 없다며 놀이를 접고 장난감을 정리하던 순간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동안 자기에게 한없이 따뜻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차갑게 했던 말과 표정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생각하니 미안하고 괴로웠다. 감정을 배제한 훈육을 잘못 배운 내가 차가운 머리로 이성적인 말의 내용과 형식이라며 아이를 향해 차가운 말을 던진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곱씹었다. 그리고 온도차가 큰 나의 말과 행동 속에서 아이가 느끼는 혼돈을 생각하니 많이 미안했다. 아이를 꼭 껴안고 “혼자서도 잘 놀아주어 고마워.” 하고 다시 조금은 따뜻해진 온도로 말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식탁에 남은 남편에게 "우리 00이, 클레인 놀이가 하고 싶었지? 하하 안 묻히고 하는 게 어렵지? 잘 했어! 하하 하는 엄마들도 있겠지?" 했다. 남편은 "있겠지. 그게 당신은 아니지." 했다. 나는 영영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될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나를 닮은 아이는 나의 널뛰는 온도에 맞추어 뛰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요동치는 감정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릴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지나 그저 잠잠하고 평온한 가을하늘 이고 싶다. 넓고 푸르게 한없이 품는 그런 마음이고 싶다. 내가 날씨에 예민한 것처럼 내 기분을 날씨 마냥 예민하게 느끼는 아이가 엄마의 얼굴 표정이나 말의 온도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고 티 없이 맑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하늘을 눈에만 담을 것이 아니라, 태도와 마음으로 닮아가고 싶다. 오늘 내린 비로 내일부터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고 한다. 차가운 공기와 시린 하늘에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기로 다짐한다. 내용이 무엇이건 전달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품 만큼은 항상 따뜻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