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여, 너무 욕망하지 마세요
*(쓰고 보니) 주의: 제목처럼 육아의 비법을 전수하는 글 아님. 본인은 육아 고수 아님. 육아에 비법 같은 게 있다면 좀 배우고 싶음.
그럴 때가 있다. 유독 힘든 일들이 몰릴 때. 비가 내릴 때 더 퍼붓는다는 속담처럼 꼭 그렇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나 싶은 때가 있다. 지난 한주가 그랬다. 그야말로 육아 대환장 파티.
7개월이 갓 지난 둘째가 독감에 걸렸다. 주말에 만난 친척으로부터 옮은 것이다. 온 가족이 같이 만났는데 하필 가장 어리고 약한 막내만 당하고 말았다. 월요일부터 열이 오른 아이와 혹시 모를 위험을 가진 첫째까지 데리고 병원 가는 것으로 한주를 시작했다. 첫째는 독감은 피했지만 한 쪽 눈에 다래끼인지 빨갛게 눈이 부어올라 있었다. 독감의 위험이 있기도 하니 일단은 등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상황을 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 둘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쉬지 않고 말을 하는 여섯 살과 감기로 열이 나고 코가 막혀 괴로운 7개월 아이의 콤비네이션은 엄마의 항시 대기와 수시 긴장을 필요로 한다. 첫째 밥을 챙기고 나면 둘째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둘째를 좀 재우고 나면 첫째와 인형놀이를 해줘야 한다. 놀이를 좀 하다 잉 하고 둘째가 울면 첫째의 징징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둘째를 달래러 간다. 첫째를 좀 안아주려 하면 둘째가, 둘째를 좀 돌보려 하면 첫째가 울먹이며 나만 본다. 정말 숨쉴 틈 없는 육아의 시간이다.
보통 때 같으면 남편이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같이 돌보거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금 짐을 나누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남편은 독감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고, 화요일과 수요일에 1박 2일로 부산 출장까지 잡혀 있었다. 펑크를 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정이라 월요일도 아이와 접촉을 최소화 하려고 밤 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새벽에 나가기로 했다. 부모님도 연세가 드시면서 아픈 곳들이 자꾸 생기시는데 마침 엄마의 백내장 수술이 잡혀 있어 며칠 간은 조심 또 조심 하셔야 했다. 어디 도움을 구할 수도 없이 꼼짝 없이 며칠간 두 아이를 홀로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인간은 비상상황을 인지하면 몸과 정신이 대비를 한다. 정신이 똑바로 차려졌다. 절대 아파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다. 나 또한 독감에 걸린 조카와 접촉이 있었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비타민과 홍삼, 타이레놀을 챙겨 먹으며 몸을 챙겼다. 다음은 아이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어쩌면 타이밍이 이처럼 기가 막힌 지 딱 그 마법의 시기가 오기 직전이었다. 무서운 PMS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 화가 아이들에게 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이들, 특히 첫째에게 다정하게 말하기를 스스로 다짐하며 아이에게도 약속했다.
사실 지난 며칠간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감정을 그대로 폭발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는 그 조차도 이해를 못 했지만, 이제 제법 말로 엄마를 몰아세우는 첫째는 조목조목 내 말과 행동의 모순을 지적했다. 몇 번이나 씻으러 들어가라고 말하는 걸 듣지 않고 조잘대는 첫째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가 “엄마는 내가 엄마한테 하고 있는 이야기는 귀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나한테만 말 들으라고 소리만 지르고!” 하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진 적도 있었다. 어쩌면 이 독박육아 당첨이 이 부끄러운 순간들에 대한 참회의 시간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 시간을 정말 잘 보내겠다는 다짐이 더 굳세어졌다.
왠지 모를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육아 말고 다른 건 다 접어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쉬게 하고, 기분 좋게 잘 놀아주는 것. 필요한 것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때가 되면 아이들 밥을 준비하고, 먹이고 또 치웠다. 집안에 있는 온갖 놀잇감을 동원해 아이들과 눈 마주치며 신나게 놀아주었다. 틈틈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그렇게 쉴 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일찍 자는 둘째를 재우고서 첫째와 좀 부족했던 오붓한 시간을 채우기도 했다. 수다를 떨고, 책도 읽고, 꼭 끌어안고 첫째까지 재우니 하루가 끝이 났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쳐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누워 넷플릭스나 켰을 밤인데 생각보다 개운하고 편안했다. 찌뿌둥한 몸을 눕히니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밤 사이 열이 오른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도 틈틈이 자야 해, 자야 해 하고 꾸역꾸역 잠을 잤더니 그래도 덜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이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않은 애 둘 육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게 왜 이렇게 괜찮은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평소와 다른 점들을 떠올리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내가 이 시간이 덜 힘든 건, 내가 아무 것도 욕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나는 육아 체질이 아니야” 였다. 그런데 그 말이 무색하게 마치 육아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아이 둘을 이렇게나 다정하고 섬세하게 돌보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려니, 대체 그동안은 이게 왜 그렇게 힘들기만 했을까 싶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힘듦이 내 속에 욕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니…내가 그렇게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나.
아침에 눈을 뜨면 그 날에 어울리는 음악이 듣고 싶고, 조용히 그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 평소에는 음악을 틀면 자기가 듣고 싶은 걸 틀어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씨름을 했다. 그런데 그냥 아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아침도 나쁘지 않았다. 커피 한잔 진하게 마시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내려놓은 커피가 다 식어서야 한 모금 겨우 마시면서 식은 커피 향이 더 좋다는 걸 깨닫는다. 몇 장 읽다가 접어둔 책을 펼치고 싶다. 대신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혼자 읽을 수 있다며 엄마도 엄마 책을 읽으라는 선심을 쓰는 순간이 선물 같이 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면 어떤 보상심리로 넷플릭스를 몰아보며 맥주에 배달음식을 허겁지겁 먹곤 했는데, 이 또한 멈추고 나니 시간이 벌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그리 엄청난 것들도 아니지만 내가 욕망했던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내 삶에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의 일상은 참으로 잠잠하고 건전하다. 그래서 편안하고 건강하다. 도파민에 찌든 삶에 디톡스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자극과 재미로 빠르게 기울어버린다. 틈틈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았던 자극들에 얼얼해 진 혀처럼 이 밍밍하고 담백한 육아의 편안함과 건강함을 맛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자극을 갈망하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육아는 체질이 아니말로 대신했었다.
물론 욕망이 나쁜 것만은 아니고, 인간이기에 욕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잠잠한 일상 속에 침잠하게 되는 나의 영혼의 일부도 분명히 있다. 단순하게 적었지만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나누고 싶은 욕망을 그저 접어 놓고만 살아야 한다면 그건 어느 순간 또 다른 아픔으로, 병리적인 현상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잠잠히 육아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일상을 살아내면 생각보다 충분히 욕망하고 충족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지난 며칠간 육아에 올인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틈 또한 그러한 시간이다. 그리고 난 이 시간이 다른 어떤 때보다 충만하다고 느껴진다.
아마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더 자유롭고 분방하게 욕망을 충족했을 수도 있겠다. 이미 나일 수 없는 모습은 굳이 상상하지는 않기로 한다. 엄마가 된 이상, 지금 내게 맞는 욕망의 갯수, 크기, 모양 같은 것을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 덜 욕망하는 삶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다른 어떤 때보다 육아가 덜 힘들었고 깊었고 다정했던 지난 한주 덕분에 나의 욕망들도 어떤 이정표를 만난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욕망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달까. 내가 찾은 이 자유가 나의 아이들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것은 한편 그동안 내 욕망의 추구에 희생되었을 아이들의 기쁨을 의미하기도 해서 미안해지지만, 그저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도 여전히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니까. 언젠가 이 욕망의 추구 끝에서 찾은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여질 수 있도록 또 한번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