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육아 이런 거였지
일상이 온통 육아인 나날들에 글쓰기는 오아시스 같은 영역이다.
그래서 지키고자 애를 썼건만 지난 몇주간 나는 오아시스를 잃었다.
아이의 독감, 지독한 이앓이, 유치원 행사, 연말의 여러 약속들...정신 못차리는 이벤트들 속에서 나와의 약속이자 오아시스인 글쓰기는 제일 먼저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거의 한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 육아 이런 거였지.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손발이 묶인듯한 괴로움이 존재하는 그런 것.
둘째 아이가 한동안 많이 아팠다. 독감이었다. 열감기를 잘 안하는 첫째처럼 열은 빠르게 내려 응급실에 간다든지 입원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지만, 코감기와 기침이 꽤나 오래갔다. 자기를 힘들어하고 깨어서도 막히는 코와 계속되는 기침에 칭얼대니 옆에 꼭 붙어있어야 했다. 습도를 관리하고, 먼지를 청소하고, 피지오머로 하는 코청소와 배숙까지...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같이 있는 첫째가 독감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으로 거의 일주일을 등원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아직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 아빠는 중요한 출장을 앞두고 있어 최대한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며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셋이서만 꼭 집에 붙어 있으려니 몸이 딱 두개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순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지나간다. 아이의 독감이 지나가고 나니, 이앓이가 몰려왔다. 8개월을 향해가며 앞니 4개가 동시에 나기 시작했다. 왼편의 이 두개가 뿅 하고 나왔는데, 한쪽의 두개는 잇몸에 하얗게 드러나면서도 쉽게 나오질 않았다. 아이는 많이 울고, 눈물만큼 침도 많이 흘리고 입에 닿는 모든 걸 깨물어댔다. 내 팔과 어깨에도 멍이 여럿이었고, 식탁과 장난감에는 그 작고 하찮은 이가 남긴 자욱이 가득하다. 이앓이 때문에 괴로운 아이는 '엄마'를 더욱 또렷하게 부르게 되었고,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엄마를 불러댔다.
이앓이도 이가 나면 한숨 돌린다. 앞니 네 개가 쪼르르 나왔다. 안그래도 귀여운 아기 얼굴은 더 귀여워졌다. 움직임도 빨라지고, 앉아있는 것 보다 서 있는 것을 좋아해 뭐든 잡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울고, 또 일어선다. 지치지 않고 힘은 더 세져간다. 목욕하러 들어간 욕실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소파를 잡고 서다가 마룻바닥에 머리를 박고 넘어지기도 했다. 거실에 커다랗게 베이비룸을 만들어놓았는데, 울타리가 소용 없게 매번 잡고 서서 꺼내달라고 엄마를 불러댄다. 한숨 돌렸나 싶지만, 껌딱지의 시기가 다가와있었다.
이렇게 아이 하나였다면 귀엽다며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첫째 때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이 사실을 안채로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히 아이의 귀여움에 온전히 집중했을 것이다.). 첫째의 6살 인생도 바쁘기 그지 없었다. 유치원에서는 연말 영어 발표회가 있어서 두어달을 치어리딩과 자기소개 발표, 영어 동시와 노래, 뮤지컬까지 바쁘게 보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께는 비밀이라며 집에서 절대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데, 비밀이라고는 없는 투명한 나의 첫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을 하며 자신의 발전을 보라며 시선을 요구했다. 물론 결과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기특했지만, 아이를 치얼업 하는 나의 역할과 발표회라고 아이 꽃다발부터 응원봉과 친구들 선물까지 준비하는 일들까지 챙길 게 오만가지라 몸도 정신도 고단한 날들이었다.
더구나 일이 없을 땐 만들어서라도 하는 이상한 성미로 아이의 유치원 같은 반 여자친구들과의 파자마파티까지 기획해 1박 2일을 불태우며 체력 소진의 절정을 맛보았다. 6살 여자아이 5명은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모여서 노는 1박 2일은 그야말로 스파르타였다. 아이들 체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밤 12시가 넘어서도 넘치는 에너지로 깨어있다가 겨우 잠들어 늦잠을 기대하는 아침에는 6시에 기상해 또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준비해놓은 프로그램을 돌리고,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다 지어내 풀어냈는데도 아이들은 더 놀고 싶어했다. 기쁘고 행복했고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만, 다음번 파자마파티를 하자는 엄마들에게는 꼭 잠은 집에서 자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나만 죽을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하나라도 더 살려야 한다.).
연말이라 볼 사람들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다. 어떻게든 얼굴을 보려고 무리도 하고, 그러면서 가족들이 같이 애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향하는 건 더 넓고 많은데 실제로 챙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당장 눈 앞의 만남에라도 집중하려고 한다. 어느 순간 내가 돌아볼 수 있는 곳이 한계가 생겨 조금씩 관계에 금이 가게 될지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한계와 하이파이브하며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여전히 숭숭 드러나는 빈틈과 놓치는 것들에 마음이 허해지는 혼돈의 카오스, 육아의 삶.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조금은 나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 마주하는 그 한계와 빈틈에 괴로워한다. 사실 이 글 역시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음에도 이 혼돈과 괴로움의 상태 그대로 적어놓자는 생각으로 손이 움직이는대로 적어본다. 원래는 워드에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적어내리는 글인데, 그마저도 그냥 브런치 창 그대로 열고 적고 있다. 혹시라도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게 될까 싶어 말이다. 적어내리는 내 손에 축복을. 어느 좋은 날, 이 혼돈의 시간이 지나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날이 온다면 그때 이 글을 돌이키며 이 글이 향했어야 하는 곳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는 이 시간만이 가지고 있었을 아름다움을 길어올릴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