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못 찬 굴바구니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애달픈 워킹맘의 노래

by 솔직킴

육아에서 이것만 수월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 ‘잠’이다. 아이가 잘 자기만 한다면 엄마는 훨씬 편안하고 너그럽게 육아를 할 수 있다. 아이를 재우는 건 엄마들마다 노하우가 다들 있는데, 나의 경우는 노래다. 아무리 노래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엄마가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동요를 부르게 된다. 잠들 때 부르는 동요는 공기 반 소리 반으로 가사가 들리듯 들리지 않는듯 흥얼거리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아이는 돌까지 안아 재웠다. 예민한 아이이기도 했고 한번 놓친 수면교육의 기회는 다시 잡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안아 재우기를 선택하고 캄캄한 밤, 어스름한 새벽, 아이를 힙시트에 비스듬히 눕히고 토닥이며 ‘노을’이라는 동요를 부르곤 했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거실 창 밖으로 달이나 뜨는 해를 보며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이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다 보면 아이는 잠이 들었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머릿속엔 어디인지 모를 곳의 가을 저녁 풍경이 수 만개 그려지고 지워졌다. 테니스도 치지 않으면서 테니스 엘보우를 앓은 나의 팔꿈치와 동요 ‘노을’로 첫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첫째 아이가 자기 방, 자기 침대에서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는 때가 오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수면 교육을 최우선으로 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살짝 위기가 있었지만, 무조건 잠은 침대에 눕혀 재우는 훈련을 해낸 결과 이 친구는 누워서 자는 아이가 되었다. 가끔은 안아서 토닥이며 재우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로 얌전히 잠을 잔다. 졸리다는 신호(눈 비비기, 하품하기)를 보내면 침대에 눕혀서 쪽쪽이를 물리고, 살짝 토닥이면 잠이 든다.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불러주는 노래는 ‘섬집 아기’. 처음에는 “엄마가 섬그늘에”만 해도 스르르 잠이 들더니, 잠 퇴행기가 온다는 4개월쯤 되니 이제는 완곡 두어 번은 해야 한다. 그렇게 이 노래의 2절을 알게 되었다.


‘섬집 아기’ 1절은 잘 알고 있는 가사다. ‘앗! 그러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퍼뜩 드는 가사. 엄마는 아이를 재워놓고 바닷가로 굴을 따러 나간다. 홀로 집에 남은 아이는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기 팔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든다. 그 모습이 떠올라 짠한 마음으로 듣는 2절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그 엄마의 이야기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래길을 달려옵니다


어느 날 아이를 재우며 2절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핑 고였다. 널뛰는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 못 찬 굴바구니’라는 가사가 뇌리에 박혔다. 파도소리에 아이를 맡겨 두고서라도 가야 했던 길인데, 미처 채우지도 못하고 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엄마의 바쁜 마음이,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다.


첫 아이를 낳고 부지런히 15개월을 키워놓고는 복직을 했다. 그리고서 매일은 다 못 찬 굴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워킹맘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마 대부분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육아와 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매일 아침 등원 전쟁을 치르고 출근을 하고 나면 울며 원에 들어간 아이의 뒷모습이 밟힌다. 웃으며 준비할 걸, 달래서 들여보낼 걸 하는 후회에 복잡한 마음이지만, 1시간 늦은 출근으로 서둘러 동료들을 마주하고 바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서둘러 일에 집중해보지만 퇴근 시간을 넘기도록 마무리 되지 않는 일 때문에 조바심이 난다. 마친 일도 다시 들여다보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 최고를 해내기보다는 최선에 만족하고 만다. 그렇게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서둘러 달려 가 아이를 안고 저녁식사를 챙겨본다. 하지만 마무리 짓지 못한 메일을 들여다보거나 늦게 걸려온 일 전화를 받는 순간이면 아이는 ‘엄마는 나보다 일이 더 좋은 가봐’ 하며 입을 삐죽 내민다.


열심히 주워 담는다고 담는데 도무지 차지 않는 굴바구니. 매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다 못 찬 굴바구니. 집에서 홀로 잠든 아이도, 차지 않은 바구니를 이고 모랫길을 달리는 엄마도 짠해서, 오늘도 노래를 부르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은, 아이들은...그나마 위로는 아이가 곤히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 속도 모르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며 그렇게 쑥쑥 자란다는 사실이다.


낮은 출생율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출산에 대한 두려움, 양육에 대한 부담에서 기인함이 크다. 그 두려움과 부담을 경감하고자 좋은 제도와 문화가 확산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마 앞으로 더 좋은 제도가 도입되고 사회적으로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열린 시각과 문화가 확산된 대도 일하는 엄마들은 여전히 다 못 찬 굴바구니를 이고 발을 동동거릴 것 같다. 두어 시간 빠르게 퇴근을 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 내에 일을 마치겠다고 동동, 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내 자리, 내 일에 대한 조바심으로 동동. 결국은 꽉 채울 수 없는 굴바구니라는 걸 인정하고 그렇게 엄마로 살아야 하는 걸까. 다 채워지지 못한 생각으로 오늘도 섬집아기 2절로 아이를 재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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