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아침 햇살과 너의 웃음
가족계획을 세울 때부터 나와 그는 의견이 달랐다.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는 나와, 아이는 무조건 둘 이상이어야 한다는 그는 일단 교집합인 한 아이의 출산에 합의 했다. '자, 그럼 어떻게 한번?' 하는 차에 감사하게도 바로 임신이 되었고 그 아이를 낳아 5년을 길러내었다. 나이가 가득 차기도 했고, 하나로도 충분히 벅찬(가슴 벅차고, 벅차고 또 벅찬) 시간이었기에 둘째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건 우리집에 나 하나였나 보다.
매일 퇴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며 남편은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 둘이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동생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못 들은 척 했다. 회사에서나 친구들과 만났을 때 둘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당장 퉤퉤퉤, 를 하라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기에 아이와 남편이 둘째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느낌으로 코웃음을 치곤 했다.
그 해에는 아이가 많이 자라기도 했고, 제법 의견도 많아질 때라 가족회의 제도를 도입했다. 가족여행지를 정하고, 숙소와 갈 곳, 액티비티 같은 계획을 정할 때나 가족 간의 규칙 같은 것을 정할 때 회의를 열고 기록했다. 그런데 어느 봄날, 회의 주제로 ‘동생’이 접수되었다. 피할 수 만은 없었기에 이 기회에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2:1의 구도로 회의는 계속 되었다. 아이는 꽤나 논리적으로 동생이 생기면 좋은 점을 이야기 했고, 남편 역시 아이 둘의 장점을 피력했다. 감정적인 자극, 그럴법한 논리로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뜨리려는 두 사람 앞에서 나는 꽤 단단하게 버텼다. 그리고 그날 회의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같이 좀 더 생각해보고 이야기 하자, 는 식으로 마무리 되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의 공고한 성이 무너진 건 그로부터 몇 주 뒤,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아침이었다. 당시 우리는 동향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침이면 그날의 햇살이 거실 창으로 한 가득 들어온다.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아이가 깰까 싶어 혼자 볼륨 1로 ‘최강야구’를 시청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른 퇴근을 위해 일찌감치 출근을 하고, 나는 아이를 등원하고 출근을 하느라 아침 시간이 꽤 길었다. 밀린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면 아이는 방에서 눈을 비비며 나와 소파에 있는 내게 폭 안기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런 루틴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내게 온 아이는 웬일인지 얼굴에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기분 좋은 초여름의 아침햇살 같이 예쁜 웃음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는 예의 그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엄마, 동생 낳아주세요.”
평소 존댓말도 쓰지 않는 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웃기기도 해서 다정하게 “왜?”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왔다.
“엄마랑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면, 내가 동생이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안 그래도 큰 눈의 아이는 그날따라 더 크고 맑은 눈을 깜빡이며 날 보고 있었다. 그 말간 얼굴을 보고 나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가 생각해볼게.” 하고서는 방에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쳤어?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한거야!” 남편은 거친 상황 설명을 듣더니 끅끅 웃었다. 맹세코 본인은 그런 식으로 ‘동생라이팅’을 한적이 없다며 발을 뺐다. 동시에 “그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네. 어쩌지?”하고 희망 가득한 물음을 던졌다.
그 길로 나는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과도 눈만 마주치면 둘째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은 거의 모두가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하나 거나 둘이 거나 둘째를 가질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 중에서도 얼마 전 모친상을 겪은 한 선배님은 형제들과 그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나중에 이 시간을 혼자 보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며 동생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셔서 또 한번 마음이 덜컹 였다. 아마 이렇게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서부터 나는 한편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난 시간 동안 굳게 다짐한 마음을 깨고 둘째를 계획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번 자녀계획 역시 설계와 동시에 현실이 되었다. 마음 한 켠에 최후의 보루처럼 ‘혹시라도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의 몸이 이 계획을 막아 선다면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아, 참으로 건강한 우리!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둘 이상 낳을 때는 아이보다 더 긴 시간 생존하며 함께 해줄 수 없으니 그럴 수 있는 혈육을 만들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난 항상 그러한 이유로 아이를 하나 더 가지는 것이 맞나, 싶었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내가 삶의 사명 같은 것을 부여하는 것이 맞는지, 수단적인 삶의 목적에 반감을 가졌다. 물론 그보다도 그런 목적을 위해 부여되는 나의 책임과 수고가 부담스러운 것이 큰 이유였지만 말이다. 그 수고를 오히려 함께 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하며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데 쓴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소망하는 말을 들으며, “엄마도 동생이 둘이나 있으면서”라는 볼멘 소리를 하니, 다시 한번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삼남매의 장녀인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동생 둘에게 한 없는 의지를 하고 힘을 얻는다. 어려서는 어두움이 무서워 혼자 잠들지 못할 때 옆에 잘 수 있는 동생이 있어 좋았다. 자라면서는 놀이를 함께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세상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와 동생들은 각자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거나 해외로 떠나 살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한 축을 공유하고 있다. 집 밖에서 겪는 허다한 일에 있어서도 동생들은 변함 없는 내 편이며 동시에 뼈를 때리는 조언자가 되어준다. 세상을 살며 겪는 수많은 일 중에 가족의 일은 항상 중대한데, 거기에 있어 동생들은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다. 특히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힘드실 때,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라오는 동안 많이 부딪히고 싸우며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딱 들어맞는 조각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가 나일 수 있는 나를 온전한 나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물으면 거기엔 당연하게도 내 동생들이 있다. 그렇게 소중하고 좋은 것을 나는 둘이나 가졌으면서, 그런 동생을 만들어달라는 아이에게 무작정 거절할 권리(?)가 내게 있는지 스스로 물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변경된 계획대로 세상에 나온 두번째 아이를 보며, 그 초여름의 아침 햇살과 첫째 아이의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끔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웃음에, 햇살에 넘어가지 않았을 거라며 정신 단단히 차리고 아침이나 먹이며 등원 준비를 할 것이라고 농담(이라고 쓰고 사실은 진담이라고 읽는)을 한다. 첫째 아이도 어느 날에는 자기는 동생을 낳아달란 적이 없다며 시치미를 뚝 떼고 오리발을 내민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날 아침 우리가 공유했던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이지만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그 불안을 또 다른 존재로 나눠지고 싶었던 그 마음을. 우리가 가족이라 어쩔 수 없이 닮아 있음에도 둘째 아이가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건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그런 존재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