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오싹해지는 그 멜로디
조용했던 거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멜로디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음악인데…모빌이 돌아가면서 나는 약간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다고 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느릿한 멜로디를 듣고 있다 보면 2020년, 코로나로 온 세상이 마스크에 한 겹 가려진 듯 조용하고 우울했던 그 때의 공기, 온도, 습도가 몰려온다. 아이가 잠든 틈에 조용조용 까치발을 들고 걸어다니다 밟으면 바스락 하는 애벌레 인형, 육퇴 후 한시름 놓으며 털썩 주저앉은 소파 위 말랑한 쪽쪽이와 축축한 손수건까지…조용하고 작은 집안에서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붙어 보냈던 시간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신생아 육아를 하다 보면 필수 아이템들이 있다. 이른바 국민장난감 타이니모빌, 아기체육관, 애벌레 인형 등등…알록달록한 색에 손으로 만지면 바스락바스락, 딸랑딸랑, 삑삑 소리가 난다. 버튼을 누르면 기계음이지만 다양한 멜로디가 나오는데 누워있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도파민 폭발의 마냥 흥미로운 놀잇감이라 없이 지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놀잇감들은 십여 년이 넘게 아이들과 부모들의 관심과 고마움, 그리고 의존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를 낳고 5년만에 신생아 육아를 다시 시작하며 변함없이 굳건하게 국민 장난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템들을 손에 넣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동생이 1년 남짓 차이가 나는 조카의 육아용품을 고스란히 물려준 덕분에 당근에서 구하기 어려운 깨끗하고 좋은 용품들을 득템할 수 있었다. 둘째는 아직 뱃속에 있고 첫째가 유치원에 간 틈을 타(아, 그때가 천국이었구나!) 아기방을 정리하며 하나하나 용품을 꺼내 정비하던 날이었다. 그 유명한 타이니모빌의 전원을 켠 순간, 5년 전 첫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제는 USB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게 된 모빌을 보며 ‘거대한 1.5V 건전지 4개인가 넣고 썼었는데…’ 라고 라떼를 시전하며, 새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중에도 변함 없는 멜로디 구성에 혀를 내둘렀다. ‘이걸 또 하는구나’ 생각하며 되도록이면 안 켜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방을 정리했다.
아기방을 정리 해두자 신이 난 건 첫째였다. “어? 나 이거 좋아하는데!” 하면서 마치 그때가 기억난다는 듯 이것저것 만지는 아이가 귀엽기도 했다. 바운서에 앉아 모빌을 틀어놓고 발을 까딱까딱하는 여섯살은 너무도 사랑스러웠지만, 모빌에서 나는 소리만은 참기가 힘들었다. 왜 그렇게 속이 울렁거리는지 막달에 입덧이 다시 오는가 생각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더 그랬다. 한달 남짓 키워 집으로 데려온 아이의 잠, 수유를 신경 쓰며 루틴을 만드는 날들 속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첫째가 틀어 놓은 모빌 소리에 “얼른 꺼! 엄마 그 노래 정말 안 좋아해.”하고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른 방에서 각자 두 아이의 재워놓고 겨우 만난 남편에게 “나 모빌 소리 들으니까 울렁거려. 멀미나.”라며 “큰 사건, 사고를 겪는 사람들에겐 어쩐지 미안하지만, 나는 저 소리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라고도 했다. 남편은 “나도 그래.” 했다. 거실에서 아이들이 모빌을 켜놓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남편과 눈을 마주치면, 그 소리에서 비롯한 서로의 괴로움을 눈빛으로 공유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순간들은 행복이었지만 동시에 어려움이기도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육아에 고군분투 하던 작고 좁은 공간에서의 시간들. 말그대로 지지고 볶았던 나날들이었다. 유독 잠들기 어려워했던 아이는 안고 걸어야 잠이 들었는데, 돌이 될 때까지 아이를 안고 토닥이고 어르고 달래며 수도 없이 부르던 자장가들이 있다. 노을, 섬집아기, 곰인형 같은 것들. 잘 몰라서 겁이 났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 둘째에 대한 계획이 절대적으로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째와 남편의 합공으로 두려움을 뒤로하고 둘째를 계획하고 갖게 되었지만, 그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둘째 아이가 집에 오고 나서도 한참을 우울하고 힘들었다. 트라우마는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면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기에 문제적인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 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 첫째 아이와 남편에게 향하는 상황이 가장 무서웠다. 둘째를 가질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번째는 달랐다. 확실한 건 인간은 경험하며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전과 같은 육아를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상황을 좀 바꿨다. 이사를 했다. 밝고 넓어진 공간, 언제든 달려와 주실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부모님, 그리고 이미 어려운 시간을 지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란 첫째 아이까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이 삶에 가득했다. 배운 것들도 있다. 아이의 수면교육부터 수유에 대한 너그러운 기준까지 좀 더 많이 읽고, 듣고 실천해보았다. 안고서만 재울 수 있었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눕혀서 잠을 재운다. 작은 말소리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믹서기를 돌려도 꿀잠을 잔다. 혹시나 자다가 울며 깨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가서 다시 잠을 재우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혹시 깨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깬 아이와 시간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잠에서 깬 아이를 바운서에 눕혀 모빌을 켜주기도 하고, 아기 체육관에 눕혀도 본다. 애벌레 인형을 손에 들고 딸랑딸랑 아이에게 흔들어 보인다. 몰라서 어렵고 피하고만 싶었던 첫째 육아의 트라우마를 둘째 아이와 함께 극복하고 있다. 소리만 들어도 괴롭던 육아템들은 이제 육아의 구세주가 되어준다.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거의 극복이 되었다. 물론 가끔 둘만 있을 때 타이니모빌의 멜로디가 귀를 찌르는 것 같은 때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줄을 알게 되었 달까? 그리고 이렇게 조금은 성장한 엄마의 마음은 첫째 아이에게로 향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너를 다시 만난다면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너를 돌볼 수 있을텐데, 하는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이 차오른다. 오늘 또 동생의 바운서에서 모빌을 틀어놓고 팔베개를 한채 발을 까딱일 너를 이 마음으로 바라봐야지. "당장 끄고 씻어!" 라고 소리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