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일

by 솔직킴

두번째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며 가장 두려웠던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모유수유’다. 아이와 한 몸으로 지내는 280여 일이 지나면, 아이는 이제 나의 몸 밖에서 자신의 몸으로 존재한다. 탯줄을 끊음으로 나와 진정한 분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유수유는 그렇게 분리된 우리를 다시 한번 몸으로 잇는 시간이다. 어딘가 모르게 고귀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내게는 ‘짐승의 시간’으로 박제된 기억이었다. 실제로 남편과 나는 첫 아이의 모유수유 시절을 그렇게 부른다. 짐승의 시간을 지난 나는 이후 출산 자체를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고 아팠고 괴로웠고 우울했다.


시작부터 고통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걷기만 해도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나는 신생아실 옆의 수유실로 향했다. 내 품에 안긴 아이는 헐떡이는 숨으로 젖을 찾았다. 어둡고 끈끈한 수유실 안에는 나와 같이 수유가 처음인 엄마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물기 어려운 모양의 가슴이라 유독 낑낑 댔다. 먹지 못해 괴로운 아이와 물리지 못해 괴로운 나. 아이는 잠시 안겨 있다가 거세지는 울음으로 간호사 선생님께 안겨 돌아갔다. 어쩌다 평화롭게 젖을 물리고 있는 다른 산모를 볼 때면 어쩐지 초라해 지기 마련이었다. 아이가 물지 못해 차오르는 나의 가슴은 수시로 돌덩이가 되었다. 아프고 우울했다.


조리원에 들어가서도 이 모유수유가 화두였다. 아이에게 어떻게든 초유를 먹여보겠다고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유축기로 열심히 모유를 뽑아내 날랐다. 모유는 내 몸에 도는 피가 유선세포에서 걸러져 만들어진다. 아이를 먹여야 한다는 뇌의 신호를 받아 세차게 도는 피는 가슴에 모이고 뽑는 족족 다시 차 올랐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아이를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뽑는 것보다 더 많이 차는 가슴은 나중에는 말그대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수시로 오케타니 마사지를 받았다. 돈도 돈이지만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마사지를 하며 천장이며 벽 사방에 튀는 모유를 보는 것도 괴로운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불덩이 돌 가슴은 계속 됐다. 속옷이나 티셔츠가 닿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조리원에서처럼 매일 마사지를 받기도 어려우니, 고육지책으로 속옷과 옷의 양 가슴 부분을 가위로 도려내고 입었다. 어느 날 수유를 마치고 손과 가슴을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서 도려낸 속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퀭한 눈을 한 내 모습을 거울로 보았다. 매일을 그 모습이었을 텐데, 출산 후 70여일이 지난 그날 에서야 마치 그 모습을 처음 본 것처럼 문 앞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놀라서 달려온 남편의 머릿속 사진첩에는 그 때 그 장면이 생생히 각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때를 ‘짐승의 시간’이라고 부르며, 출산 후 대표적 장면으로 소환하곤 한다.


이 정도면 모유수유를 포기할 법도 한데 나는 언제나 모든 일에 끈기가 있는 편이었고, 이 일에도 그랬다. 면역력, 정서적 안정, 교감 같은 유튜브에서 주입 당한 모유수유의 이로움, 엄마와 아이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주변의 부추김, 그리고 한 번 시작한 건 언젠간 끝을 보는 나의 고집이 이 짐승의 시간을 무려 8개월이나 지속하게 했다. 불덩이 돌가슴은 8개월 내내 순간순간 찾아왔기에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부족한 양을 채우고자 꾸준히 분유를 먹어야 했다. 가슴이 뭉칠 때면 비싼 돈을 주고 마사지를 받으며 풀고, 다시 뭉치고를 반복했다. 논알콜, 논카페인에 미역국이 주식인 식사도 계속 되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시는 코로나19가 발발한 해라 아이는 바깥 출입이 최소화된 삶을 살며 돌이 지나도록 감기 한번 열 한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부추김의 당사자들은 엄마가 모유수유를 잘해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15개월이 지나 원에 입소하며 아이는 바로 감기를 달고 살았고, 어떤 달은 약을 먹지 않은 날이 고작 며칠일 정도로 길게 아프기도 했다. 응급실 한번 안 가고 자란 것만으로도 이게 다 네가 모유수유를 하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코멘트는 가끔은 위로였지만 주로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후 누군가 모유수유에 관해 물으면 이런 복합적인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느라 우왕좌왕했다.


둘째를 고민하는 내내 이 짐승의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솔직히 출산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첫째 아이로 충분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5년만에 다시 출산을 결심했지만, 모유수유 문제만큼은 고민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유를 해야지, 아니 안 해야지, 마음이 오갔다. 그때와 같은 내 가슴모양, 눈치 없이 충분히 차 올라서 아이가 먹지 못하면 돌이 되어버리는 내 가슴. 고민하는 내게 최근에 출산을 경험한 동료는 조용히 분유제조기를 물려주었다. 집에 떡하니 들여놓고도 마음 한 켠에는 그래도 가능하면 모유수유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둘째를 출산을 하고 회복이 빨라 이튿날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도 ‘그래, 일단 초유는 먹이자’ 생각했다. 여전히 아이가 가슴을 잘 물지는 못했지만, 보조해주는 도구를 활용해 조금씩 물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정도만 조심스레 유축을 하니 생각보다 양조절이 수월했다. 전처럼 아프지도 않았고 돌덩이가 되지도 않았다. ‘어? 이거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조리원에서는 더 열심을 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유축과 수유를 해보고 젖이 더 차오르지 않도록 차도 마시고, 매일 가슴 마사지를 받으면서 축복의 상징 같은 모유수유의 아름다운 장면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세상 일, 특히 육아는 나의 기대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너무도 평온한 내 가슴이, 아프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따뜻하고 말랑한 가슴이 아이에게 줄 충분한 모유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도 태도도 짐승에서 아름다운 모성의 모습에 가까워졌는데 막상 줄 모유가 없는 아이러니. 나도 모르게 후련한 마음이 몰려들며 한편으로는 그때 뇌에서 보낸 신호와 지금의 신호가 달랐던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쩌면 엄마가 처음이던 그때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넘치던 모유처럼, 아이를 향한 내 마음 역시 그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 말이다. 둘째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이 미안한 일들이 생긴다고 하던데, 생후 3주만에 밥을 주지 못하는 엄마라니…예상도 못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빠르게 단유를 하고,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있고 그래서 나는 많이 편해졌다. 아이를 놓고 운동도 2시간 정도 다녀오고, 무슨 복인지 생후 45일만에 밤중 수유도 끊은 아이 덕에 기본 6-7시간은 밤잠을 잘 수도 있었다. 짐승의 시간에서는 멀어졌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때의 나와 첫째 아이를 좀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끈끈하고 뜨겁게 기억되는 그 시간이 있어서 지금의 엄마인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지나고서야만 할 수 있는 말도 넌지시 내 안에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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