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돌봄의 연장선 상에서
아이의 빛이요, 구원은 엄마다. 어떤 상황이든 그저 엄마를 보기만해도 웃음 짓는 아이를 보자면 내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건지 어쩐지 찡해진다. 묵직한 책임감도 몰려온다.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몇 살 정도 되면 이런 책임감을 내려놓고 좀 자유로워질까, 하는 질문이 주제로 등장한다. 초보 엄마들과는 학교에 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희망찬 답을 내어보지만 이내 선배 엄마가 등장해 관 뚜껑 닫을 때까지 그런 자유는 없다, 고 심플하게 결론을 내린다. Period.
그렇다. 관 뚜껑 닫을 때까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며 한 순간이라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과 상태로 있었던 적이 있나 싶다. 붙어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아이에 대한 어떤 생각들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 시절부터 아기가 스스로 몸을 가누기까지는 물리적으로도 묶여 있게 되는데 그때는 정신은 됐고 잠시라도 아이의 울음소리,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거리를 두고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바동거리는 팔과 다리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다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까. 하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 절실하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삶에 빛이요, 구원 역시다. 엄마의 엄마. 다시 한번, 관 뚜껑 닫을 때까지. 부모로서의 역할이 부여된 이상, 그 무거운 책임감은 자식 나이 마흔을 넘겨도 끝을 모르고 계속된다. 우리 엄마는 첫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이면 전화를 걸어 지난밤 아이들은 잘 잤는지, 내 끼니는 챙겼는지를 물으신다. 둘째를 낳고서 몸이 좀 회복되기까지는 매일 집에 와 계셨고,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몸이 회복이 된 이후로는 매일 오후 세시면 집에 오셔서 나를 헬스장에 보내신다. 아기를 돌보며 밀린 젖병 설거지를 하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접어 놓으신다. 반찬이 없으면 반찬을 해 놓으시고, 냉장고가 정신 없으면 냉장고 청소를 한다. 그렇게 집안일은 하시지 말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건 무어라도 하신다. 내 손을 좀 덜어 보시겠다고 말이다.
어느 날은 그게 너무 죄송해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 미리 집안일을 해놓기도 하고, 맛있게 드시라고 간식거리나 식사를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지친 몸으로 그저 엄마한테 다 맡기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날도 있다. 내일 모레 칠순을 앞둔 엄마에게 마흔의 딸은 또 기대어 산다.
사실 첫째를 낳고 나서는 한창 부모님이 새로운 일로 바쁘실 때라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계셨지만, 아이의 새로운 원 적응기나 방학처럼 장시간 돌봄이 필요한 때, 오래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편과 둘이서 온전히 아이의 양육을 감당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며 버거운 순간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꽤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우리의 육아는 잘 굴러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5년만에 다시 신생아부터 시작하는 육아는 변화무쌍한 여섯 살의 첫째 아이를 돌보는 일과 함께 굴러가야 하기 때문에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다 느껴졌다. 친정 찬스. 그렇게 둘째를 가지고 출산이 임박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출산 전까지 무거운 몸으로 출퇴근을 하며 새롭게 원에 적응해야 하는 첫째 아이와 씨름을 하는 일부터 함께 해주신 엄마는 이제야 널 제대로 도울 수 있겠다며 살림과 육아 전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이전까지 스스로 해왔던 것들이 있기에 엄마에게 그렇게 까지 안 하셔도 된다며 되도 않게 자만했다. 출산 후 한달에 가까운 입원과 조리원 생활로 집을 비우며 집안 살림과 아이 돌봄은 온전히 엄마 몫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아이와 집에 남으면 살짝 숨이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가 살짝 스쳐 지나갈 만큼 엄마 의존도는 높아진 상태다.
다른 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높아진 엄마 의존도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K-장녀 콤플렉스 일지도 모르겠는데 부모님을 기댈 대상으로 두지 않고 내가 어깨를 내어놓아야 하는 대상으로 두는 막연한 마음가짐이 있다. 이건 K-장남인 남편도 마찬가지라서 마냥 받기만 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단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비슷한 마음을 종종 토로하곤 한다. 매번 감사해하기보다는 죄송해하고, 조금이라도 여력이 되면 집에 못 오시게 하려고 애를 쓴다. 오늘은 쉬세요, 하면서.
엄마는 그런 우리에게 언젠가 서운함을 토로했다.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부탁 하나 하는 걸로 힘들어하는 나를, 우리를 유난이라며 말이다. 이제야 시간이 생겨 해줄 수 있는 게 기쁨이고 즐거움이라며, 첫째 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끝도 없이 하신다. 나처럼 엄마도, 아니지 엄마처럼 나도 엄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한없이 짠한 우리. 엄마, 엄마의 엄마.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띵동, 한번 벨을 누르고서 거침없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입성하는 엄마를 기다린다. 거침없지만 벨 한 번 정도로는 조심스러운 우리 사이. 그렇게 오늘도 엄마의 엄마는 기나긴 돌봄의 연장선 상에서 딸을 살핀다. 우리가 돌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은 올까? 그래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며칠, 아니 하루 정도라도 둘이서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도 엄마는 우리 키웠던 이야기, 나는 우리 애들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