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그리고 돼지갈비탕

과녁을 빗겨난 그의 노력에 관하여

by 솔직킴

출산은 궁극적으로는 원가족 안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특히 첫 아이의 경우는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로서 경험하는 이벤트와 따르는 감정들이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출산을 몸으로 직접 경험한 여성은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변화를 경험하며 아마도 청소년기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남성 역시 가장 가까이서 그러한 과정을 목도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내와 아이가, 가정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한 가족이 탄생한다.


앞서 썼던 것처럼 꽤 격렬한 산후 우울로 고생을 했던 나의 경우는 남편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 전부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과녁을 빗겨난 그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활성화 되며 나는 첫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남편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만 출근을 하며 꽤 긴 시간 동안 육아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혼자 있지 않아도(분명 아이가 함께 있는데도 이렇게 말하게 되는 날들이다)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위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얼마나 부대끼는 순간들이었는가.


남편은 나의 우울과 불안을 잠재우고자 여러 방법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빠와 엄마의 다른 점들은 나의 우울과 불안에 떨어지지 않는 땔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이 지펴진 감정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에게 향했다. 지나가는 길목에 앉아있어서, 부르는 데 한번에 대답을 하지 않아서, 수유하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서, 새벽 수유를 하는데 옆에서 졸아서…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그는 샌드백처럼 집중포화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기저귀 갈이부터 목욕과 수유 후 트림 시키기, 혼합 수유 시 분유 수유까지 그는 거의 모든 육아를 도맡아 했다. 궁극적으로 먹이고 재우는 것이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에게 고정 되었기에 전반적인 부담은 여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수 밖에 없지만, 이런 식으로 육아에 참여를 하는 아빠는 마땅하며, 그를 향한 칭찬 역시 마땅하다. 육아 참여도나 출산한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다만 문제 역시 그의 노력이었다.


집에서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고 어려웠던 것이 끼니를 챙기는 일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식탁을 차려내는 것에 살림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메뉴를 선정하고 요리를 하고 예쁜 플레이팅까지 완벽하게 해내려는 쓸데없는 욕심과 주부로서의 지나친 책무감에 나는 주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마 빠르게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시간은 그야말로 금이었다. 물리적으로 주방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재우는 시간에는 아이와 떨어질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주방을 남편에게 내주는 날들이 생겼다.


그는 주방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부터 인가 요리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에 나온 요리들을 해주겠다며 재료를 사고, 요리를 시작했다. 모유수유 중이라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가 하는 요리에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맞추면 맞춰 준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진심으로 맛있게 먹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항상 그렇듯 가상했다.


그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발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40일 정도 되었을까, 아직은 추웠던 초봄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백종원의 유튜브인지 TV프로그램을 보고 그가 돼지갈비탕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돼지갈비로 끓인 탕이라니 상상도 안됐지만, 딱히 어떤 요리이든지 상관이 없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집안 문은 꽁꽁 닫혀 있고 빛과 소리에 예민한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재워보려고 커튼을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느 순간 집안은 탕을 끓이는 수증기로 가득차고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모유수유에도 도움이 되고, 백종원이 그렇게도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며 온통 돼지갈비탕에 집중을 하고 있는 그가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나는 참았다. 쿰쿰한 냄새도, 끈적한 공기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나온 탕을 한 입 먹고는 나는 먹기를 포기했다. 도무지 먹기가 어려웠다. 추운 날씨에도 하얀 런닝셔츠만 입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돼지갈비탕을 먹는 그는 먹지 못하는 날 미안한듯 바라보며 끝까지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애써서 만들어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 미안해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가 끓여 놓은 탕은 한 솥이었고, 매 끼니 그 탕을 다시 끓이느라 집안은 또 쿰쿰한 수증기로 가득했다. 그는 매 끼니 예쁘게 고명을 올려 내게 한술 뜨기를 권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는 이 맛있는 걸 못 먹어 아쉽다는 표정으로 후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결국은 두 그릇을 비워냈다. 나는 맨밥을 조금 뜨고는 잉 하고 우는 아이에게로 돌아가곤 했다. 어떤 때는 후르륵 소리 속에서 수유를 하기도 했다. 그런 끼니가 이틀 정도 계속 되자 속에 무언가 꿈틀댔다. 속이 울렁이는 것인지 화가 일렁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점심, 작은 냄비에 다시 돼지갈비탕을 담아 끓여 식탁에 내려는 그를 향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거 그만 끓여!!!”


그는 많이 놀랐고 내 품의 아이도 놀라 울었다. 나도 울었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내 목소리 데시벨이 싫었고, 집안에 가득한 돼지갈비탕 냄새, 그리고 창가에 송글하니 맺힌 수증기에 숨쉬기가 어려웠다. 풀이 한껏 죽은 그는 미안해 하며 남은 돼지 갈비탕을 베란다로 내갔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것을 버리지는 않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잘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를 위해 차려낸 끼니를 위한 노력을 보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의 노력이 온전히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를 의심했던 것 같다.


신생아를 길러내는 시기, 부부는 정말 이전에 없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결혼을 하고 따로 살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하며 서로를 식구로 품기까지는 겪는 갈등도 있겠지만, 겨우 서로에게 적응을 하며 3년 여를 보내고 난 뒤 새롭게 멤버가 된 아이와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겪는 또 한번의 갈등은 아주 뜨겁다. 어떤 날에는 둘 사이의 아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아이를 열외로 하고 나면 아이를 서브하는 두 사람은 각자의 최선 속에서 날을 세우고 서로의 최선을 평가(라고 쓰고 평가절하라고 읽는다)하며 홀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서로 거세게 부딪히기도 한다. 단순하게 나의 입장만을 대변해보자면 날뛰는 호르몬의 영향과 어쩔 수 없이 여성에게로 쏠리는 육아의 면면이 그저 무던하게 그 상황을 넘겨버릴 수 없게 만든다.


돌아보면 부딪히는 중에도 그는 그런 특수한 입장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리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 덕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흡수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흡수 되고도 넘치는 것들이 둘 사이의 갈등을 부추겼다.


다시 돌아가면 그 것을 알고 피할 수 있을까? 다시 내 입장을 말하자면 아니다. 5년이 지나 다시 만난 신생아 시기, 여전히 같은 이유로 우리는 갈등한다. 배려라고 생각하며 하는 행동이 서로를 더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혼자 감당하려다가 일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반응으로 동일한 다툼(이를테면 밤중에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 고의인지 아닌지를 따져묻는 그러한 사소한 다툼들)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가 더 이상 돼지갈비탕을 끓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버해 배려하지 않고 그렇다고 배려의 끈을 놓지도 않으며 아슬아슬하게 호르몬의 영향으로 널뛰는 나의 감정의 줄을 조심스럽게 탄다. 그때처럼 좁고 셋의 숨쉬는 소리만으로 가득한 집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때의 그 공기, 온도, 습도 같은 것을 이야기 하며 한바탕 웃음으로 넘칠 뻔 했던 감정을 한 번 환기하며 조금은 성장한 우리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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