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해? 아니 이불도 위험해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위험

by 솔직킴

아이를 낳으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이가 아픈 것이었다. 워낙 불안이 높은 사람이기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미리 마음을 많이 어지럽히는 편인데 아이의 건강과 안위에 대한 갖가지 불안요소들은 임신기간부터 출산 후까지도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었다. 아니, 짐이다. 첫째 아이를 6년 가까이 키워오며 그 짐을 꼭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나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이는 돌이 되기까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랐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어디를 크게 다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여러 이유들에 불안을 더하여 둘째 아이 낳는 것은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짐을 덜어내고 덜어내도 하는 수 없이 하나 더 져야만 하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고, 그렇게 둘째 아이는 나의 불안을 딛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세상에 나왔다.


출산과 신생아 양육의 과정이 순탄해서 였을까? 나의 불안은 많이 잦아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임신 기간 중에도, 출산 후에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건넸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순식간에 터진다.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는 오후 3시부터 5시, 2시간 정도를 집 앞 피트니스에서 보낸다. 운동도 하고 차분하게 씻는 시간이다. 그날은 어쩐지 운동이 너무 가기 싫은 날이었다. 엄마가 오셨는데도 뭉그적거리다가 다른 날보다 30분 정도 늦게 집을 나섰다.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물병에 물을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너 빨리 집으로 와! 00이 침대에서 떨어졌어!”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도 함께 였다. 다시 생각해도 바람처럼 가방을 챙겨 집으로 냅다 뛰었다. 뛰면서 입으로는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험한 말이 나왔다. 헐레벌떡 단지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차분해진 목소리였고, 아이가 분유를 먹는 중이라고 했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숨이 푹 쉬어졌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까지 걸린 시간은 3분 남짓이었는데 체감으로는 몇 십 분은 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고르며 몇 가지를 다짐했다. 놀란 목소리 내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그렇게 현관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를 보니 다행이 아이는 진정한 상태였다. 이마에는 빨간 자국만 조금 남아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엄마가 화장실이 급해 침대 안쪽에 아이를 놓고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아이가 굴러 침대 끝까지 내려왔던 모양이다. 아직 6개월도 안 된 아이라 뒤집기 정도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배밀이를 연습한지 이틀 정도 만에 침대 끝까지 주파를 해낸 것이었다. 꽤 높은 어른 침대라 떨어지는 찰나에 엄마가 발견을 하고 황급히 발로 아기 머리를 받치셨다고 했다. 아이는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은 없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엄마였다. 진정한 아이와 달리 사색이 된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매일 아이만 보고 있는 딸이 안타까워 시간을 내어 와서 아이를 보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셨으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우셨을까.


아이를 살피며 놀란 엄마를 살피느라 그날 오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목욕 시키며 아픈 곳은 없나 구석구석 살피고, 잠이 드는 것까지 지켜보고서 엄마는 집으로 가셨다. 집으로 가는 엄마를 배웅하며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렸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엄마한테 겨우 말했다.


“엄마, 내가 괜히 미안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도 문이 닫히며 “니가 왜…”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속으로 ‘아, 나 애 또 왜 낳았지’ 하는 하나마나 한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매 순간 마음 졸이고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하면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마음 가득 죄책감과 미안함이 차오르는 일. 그 죄책감을 나 홀로 다 짊어지지도 못해 나의 부모에게 까지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로움이 밀려오는 일. 그 어려운 부모의 자리를 한 아이에게만 내어준 것도 모자라 다른 아이에게 까지 내어준 내 자신이 과연 깜냥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 무한한 의문과 후회가 샘솟는 날이었다.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런 날들이 있었다. 50일도 되지 않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다가 잘못 깎아 작은 손가락에 빨간 피가 맺혔던 날. 나는 엉엉 울었다. 아직 고통도 잘 모르는 아이가 앵, 하고 우는 소리에 내가 과연 부모의 자격이 있는가 자문하며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그 아이가 자라 코감기에 걸려 코가 목으로 넘어가 잠을 잘 자지 못할 때도, 독감에 걸려 시름시름 앓으며 살이 쭉 빠지던 겨울 날에도, 어린이집에 늦어 같이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에도 나는 아이의 상처와 아픔이 다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해 하며 울었다. 스스로에게 부모의 자격을 운운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너무도 크고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애당초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신생아를 키우다 보면 나라에서도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경고를 보내온다. 영유아 검진을 하면 스스로 진단하는 질문지에 아이를 혼자 침대에 올려놓은 적이 있는지, 아이를 앞에 두고 뜨거운 음료를 마신 적이 있는지 등을 물으며 경고를 보내온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지만, 따뜻하라고 덮어놓은 이불이 아이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기에 육아에서는 이불도 위험한 것이 된다. 그만큼 내가 일상에서 피하기 힘든 어떤 행동들이 아이의 생존과 안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조심하지 않으면 침대 낙상사고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음이 육아의 현실이다.


운이 좋게도, 참으로 다행이게도 그런 사고 속에서도 많은 경우 아이들이 심하게 다치지 않거나, 아프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허나 그 확률에 안심하기에는 확률을 빗겨 났을 때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그 위험과 불안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되 묻게끔 한다. 그리고 일단 낳아 기르기로 선택했다면 이 위험과 불안을 안고 책임지며 가야 한다. 두번째라고 조금은 여유도 생기고 마음도 편안해 졌다지만 여전히 이 위험과 불안을 안고, 이제는 하나가 아닌 둘에 대한 책임감을 지고서 뚜벅뚜벅 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출산율이 낮다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며 과연 이 무거운 책임의 무게를 누가 누군가에게 감히 지라 마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이미 해 본 나도 이렇게 두려운 일을, 그래서 누가 하겠다고 할 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문제가 되어버린 일을 쉽게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십시오, 하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 무게를 너무 가벼이 여겨서 세상에 나오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하고, 자라나며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는 어떤 아이들의 문제가 낮은 출산율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더 근원적인 문제 아닐지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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