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다는 나의 세상을 개벽하는 일
나의 두 번째 아이를 낳고 소위 '천국' 이라 불리는 조리원에 들어와 있다. 오늘로써 입실 이틀째. 첫 출산 때와는 다르게 몸도 가뿐하고(무게가 가뿐하다는 뜻은 아니고), 정신도 맑다. ‘조리원이 천국’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거대 불덩이 같은 가슴을 달고, 얼굴은 못 보니 영상통화라도 하겠다는 가족들에게 고래고래 “내 손목은 신경도 안쓰냐”며 소리를 지르던 짐승 같았던 때와는 달리 바닥을 치던 우울감도 거의 없다. 계절이 계절이라 그런가 4월의 햇살처럼 밝고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첫 출산의 경험이 5년이나 흐르고 나서야, 조금은 희미해진 나의 짐승의 시간(나와 남편은 첫 아이 출산 후 8개월간의 시간을 그렇게 부른다)을 뒤로하고 또 한번 출산을 해내었다. ‘임신과 출산’, 이렇게 딱 다섯 글자로 말하기에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들과, ‘육아’라는 두 글자가 참 무례하게 느껴지는 여전히 고잉온인 그 네버엔딩 스토리를 ‘언젠가는 한번 글로 남겨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고 그 글을 이제서야 진짜로 쓰기 시작한다. 조리원 입성 이틀 차에 말이다.
사실 두번째 임신기간 내내 “애 낳을 결심”이라는 제목이 무작정 떠올랐고, 그 지붕 아래 계속 글을 써 내려가고 싶었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일을 가진 직업인으로, 또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사람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꼭 한번쯤을 풀어내어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우산을 만난 기분이다. 하지만 불러오는 배가 무색하게 엄마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어도 절반 쯤은 되는 다섯 살 딸 아이,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새우깡 같은 남편, 그리고 책임급으로 정말 무언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직장에서의 생활까지 나오는 배와 책상 사이의 거리만큼 닿을 듯 말듯 글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출산일은 다가왔고 짐승의 시간 -다시는 뭐라도 적지 못할 것 같은 전혀 달라진 일상, 헝클어진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초점을 잃은 눈동자- 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런데 이번 두번째 출산을 경험하며 그 두려움이 또 막연하게 사라지고 있다. 유독 안개가 많은 우리 동네에서는 아침해가 쨍 비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벽의 안개가 기가 막히게 걷히는데, 꼭 그렇게 말이다. 내 몸이 엄청 비대한 동시 비루하고 짐덩이처럼 느껴지던 수술대 위에서도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무난하게 수술의 과정이 지나갔고, 벌벌 떨며 모두가 날 비웃는 것 같았던 마취가 깨는 침상 위의 시간도 간호사 선생님들의 친절함 가운데 생각보다 따스하게 흘러갔다. 어둡고 피비린내 가득한 답답한 입원실의 공기도 이번에는 달랐다. 첫 아이 출산 이후로 단둘이 있는 시간이 정말이지 없었던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둘이 있는 시간도 좋았다. 눈물 콧물 짜내며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정주행 하며 잘 살자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가장 두려웠던 젖몸살의 괴로움도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편안해 졌다. 이건 기적인가, 행운인가. 아니면 짬에서 오는 바이브? 애 하나를 낳고, 5년의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아이를 얻고 난 뒤에야 어떻게 이렇게 아이 둘을 낳아 기를 생각을 하였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나의 세상을 개벽하는 일을 위해 했던 결심과 그 결실들을. 결심이 없이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그래서 결국 맞이하기 어려웠을 그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짚어보기로 했다. 내가 쓰는 이 글이 나에게는 너 참 잘했다 토닥이는 글이 되기를, 변덕스럽고 욕심 많은 나를 한없이 품고 사랑만 해주는 나의 소중한 가족들에게는 고마움을 전해주기를,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가 되기를, 그리고 혹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 결심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출산 이후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바라건데 작은 용기가 되기를. 천국같은 이 시간으로 언젠가 또 짐승의 시간이 침범한다 해도 이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