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goes around... Ⅱ

by 박규동


“승훈 씨, 내 말이 이해하기가 어렵나? 내가 어렵게 말하는 건가? 로비에 청소 카트 두지 말라니까?”


'야, 이 씨년아. 내가 잠깐 둔 거지, 계속 거기다 뒀냐? 미년이 말하는 싸가지가 돌았나. 너는 언젠가 내가 망치로 대가리를 찍어 뭉개서 죽여버린다.'


“죄송합니다. 여기 잠깐 두고 과장님 심부름하느라.”


미영은 변명하는 승훈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내뱉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승훈이지만, 일에 관해서는 철저해야 한다는 게 미영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승훈에게 말했다.


“변명하지 말고. 빨리 창고에 갖다 놓고 와요.”


'변명? 머리 가죽을 다 뜯어내 죽여버리고 싶네. 씨년.'


“네. 갖다 놓겠습니다.”


승훈은 로비의 구석에 있는 청소 도구함을 향해 카트를 들이밀었다. 어둠과 거미줄이 가득한 창고에는 로비와 객실의 화려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창고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이렇게 가끔 창고에 들어와 몰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소리를 죽인 채 게임을 하는데, 발등 위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올라섰다.

승훈은 개의치 않고 게임에 몰두했다. 어두운 창고에 유일한 빛은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승훈은 급하게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훈 씨, 여기 있는 거 아니야?”

“예.”

“뭐 해 여기서? 됐고, 빨리 나와봐요.”


'씨.'


숨어 있을 권리를 빼앗긴 승훈은 미영을 따라 로비로 나섰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여자 화장실이었다.

미영이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여기 분명 있었는데, 어디 있지. 어, 저기 있다!”


작은 바퀴 한 마리였다. 창고에서만 발견되던 바퀴벌레가 화장실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미영의 호들갑에 승훈은 화를 숨긴 채 바퀴벌레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휴지로 바퀴벌레를 잡아 변기에 던진 후 물을 내렸다. 물이 내려가는 소리에 승훈은 직원들과 식사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승훈 씨는 벌레도 안 무서워한다니까? 게다가 더러운 거랑 잔인한 것도 되게 잘 봐. 겁이 없는 것 같아.’


여자 화장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젊은 여자는 화장실 안의 승훈을 보고 놀라 기겁했다.

그것은 미영이 바퀴벌레를 보고 보인 반응과 같았다.


미영과 승훈은 과장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승훈은 땅만 바라보며 호텔의 바닥을 관찰했다.

'기어 다니나, 걸어 다니나, 다들 벌레 같네.'


과장의 훈화 말씀이 끝날 때, 승훈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저녁 8시가 되면 그에게 정당하게 집으로 돌아갈 권리가 주어진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8시 10분쯤이 되었을 때, 그는 조용히 외투를 입기 시작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과장에게 고개를 숙인 후 호텔의 문을 열었다.


바깥은 차가웠다. 호텔 안에는 그가 싫어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돈이 아니었다면 분명 저곳에서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승훈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의 여성들이 본인을 피한다는 망상에 빠질 때쯤, 버스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도착했다. 외진 곳에 사는 이유에 그와 함께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버스 가장 앞자리에 앉은 승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얼어붙은 강을 보던 승훈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강은 거대한 거울과도 같았다. 그는 거대한 거울을 바라봤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생각을 보탰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만약에 동화처럼 누군가 기도를 들어준다면, 나는 지금 무엇이 되어, 어디에 있었을까?'

얼어붙은 강에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노래하는 승훈의 모습이 펼쳐졌다. 강변 살얼음 부분에 있는 관객들은 그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들이 던지는 꽃에 승훈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버스는 가장 어두운 곳에 그를 내려놓았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골목골목을 누비던 승훈은 미로에 갇힌 쥐와 같았다. 그는 빌라의 지하에 들어가 철문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거실 불을 켠 후 옷걸이에 외투를 건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TV 앞에 앉았다. 그다음은 평소와 같이 라면을 끓여 먹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욕구가 한 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까. 승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부엌 옆 보일러실에 들어가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검은 모자와 망치. 바지춤에 넣은 망치는 차가웠다. 다시 한번 외투를 입고 그는 집을 나섰다.


그가 사는 곳의 강변에는 ‘마법의 수로’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승훈뿐이었다. 그곳에는 밤하늘보다 어두운 배수구가 있었다. 그곳에 넣은 물건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승훈이 그곳을 마법의 수로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그의 취미는 특별할 것 없었다. 배수구 근처에 있는 노숙자를 찾는다. 노숙자의 머리, 팔, 몸, 다리 모든 곳을 망치로 때린다. 노숙자의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그의 코였던 곳에서 김이 새어 나오지 않을 때, 승훈은 그들을 마법의 수로에 던져 넣는다. 그의 머리는 맑아지고 얼굴엔 미소가 피어난다.


강변을 걷는 승훈은 ‘밤 산책을 자제하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경찰에게 체포되는 공포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는 희미해졌다. 승훈은 그가 죽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존재들이라 믿었다. 세상이 굴러가는 데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 심지어 가끔은 자기가 인류를 위한 봉사를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거리의 부랑자들, 그들의 우울한 삶을 끝내주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


승훈은 다리 밑에서 검은 침낭을 발견했다. 벌써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바지춤의 망치를 꺼내 침낭을 향해 다가갔다. 침낭을 뒤집었을 때, 그는 이미 죽어있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어 죽은 것이다. 혼란을 느낀 승훈은 망치 끝으로 그의 머리를 긁었다. 그는 다시 바지춤에 망치를 넣은 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변을 벗어나 도심으로 돌아온 승훈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5명은 넘게 죽였을 것이다. 그가 죽인 적은 많았지만, 죽은 것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별일이 다 있네.'


승훈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거실 불을 켰다. 보일러실에 모자와 망치를 넣은 후, 손을 씻었다. 이제야 배고픔을 느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연예인들의 농담을 반찬으로 그는 웃으며 라면을 먹었다. 가끔은 TV 속 코미디언들이 너무 웃겨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자정이 넘었을 때, 그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아침 해가 뜰 때 승훈은 다시 호텔로 향해야 한다. 그는 지내야 할 따뜻한 집이 필요했다. 먹어야 할 음식을 살 돈이 필요했고, 게임을 할 핸드폰 비용을 내야 했다. 미영이나 과장의 고문은 나름 버틸 만했다. 기계 같은 수면은 순식간에 끝이 난다.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그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제야 아침 해가 떴음을 알 수 있었다.

출근하는 버스에서 그는 또 한 번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언제까지 TV를 보고, 라면을 먹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는 과거에 우울하지 않고 미래에 불안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얼어붙은 강은 모든 걱정을 그려냈다. 그는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들의 원인을 유추했다. 어제는 분명 사람 하나를 죽을 때까지 패야 했던 날이었다. 그는 얼어 죽은 노숙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느낌에 슬픔을 느꼈다. 그가 사람을 망치로 때려죽일 때 그의 머리는 샘물보다 맑아지곤 했다.

그것은 그에게 과거에 우울하지 않고 미래에 불안하지 않을 지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혹한의 추위는 그의 쾌락을 훔쳐 바람이 되어 날아갔다. 금단현상에 마치 그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흑과 백뿐인 그의 머릿속에 색채가 들어서는 공포를 느꼈다.


승훈은 아직 버스에서 내릴 차례가 아니었지만 빠르게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있어야 할 호텔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겨울의 추위는 공허를 포함한 그의 모든 생각을 얼려냈다. 빨개진 귀와 하얘진 볼,

그의 흐린 눈은 호텔 옥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공상에 빠질 여유는 없었다.

그는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옷을 갈아입기도 전, 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으면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하지?”


'이런 씨년이….'


승훈은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잘 구운 밀가루 향. 미영은 승훈에게 잔소리를 마친 후,

그에게 붕어빵 하나를 건넸다.

'나한테만 안 주기는 양심에 찔렸나 봐?'


“감사합니다.”


승훈이 온갖 잡무를 끝냈을 때 해는 이미 저물었다. 그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특히 해가 빨리 지는 겨울에는 더욱 그랬다. 그는 금요일의 야근을 가장 두려워했다. 클럽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가 호텔 로비와 입구를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 그의 공포는 현실이 된다.


“승훈 씨 오늘 야근 좀 도와줘.”


과장의 목소리에 앵무새처럼 대답이 튀어나왔다.


“예.”


밤하늘이 어두워질수록 사람들이 별처럼 많아졌다. 그들은 바깥에서 눈을 밟은 후, 호텔 로비에 더러운 발자국을 찍어낼 것이다. 승훈은 상상만으로도 화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 창고에 숨어 게임을 하던 그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로비로 향했다. 취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해서, 업무태만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비에는 클럽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미 검은 발자국들이 쌓여 있었다. 승훈은 다시 청소 도구함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렸다. 미영은 그의 생각을 읽은 듯 그에게 말했다.


“뭐 하러 지금 닦아요. 과장도 없고, 어차피 사람들 계속 왔다 갔다 할 텐데.”

“네.”

“인간들 진짜 문 좀 닫고 다니지. 추워 죽겠네. 승훈 씨 가서 문 좀 닫아줘요.”

“네.”


승훈은 문을 닫기 위해 호텔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선 그는 클럽 앞에 줄을 선 인간들을 구경하는데 푹 빠졌다. 줄의 끝자락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나은인가? 나은이 맞나? 3학년 때 분명 같은 반이었는데.'


익숙한 얼굴이 그를 바라보았을 때, 승훈은 당장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자신이 입은 유니폼이 한 번도 창피한 적이 없던 그였다. 승훈은 붉어진 얼굴로 숨을 곳을 찾았다.

'어차피 날 기억하지는 못하겠지? 그래. 당당하게 있자. 어차피 내가 누구인지 모를 거야.'


익숙한 얼굴은 줄에서 이탈해 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기 시작했다. 검고 긴 생머리, 유난히 큰 눈과 붉은 입술. 조금 휜 코. 변한 것이 없는 나은이었다. 가죽 재킷을 입고 있는 것만이 조금 어색할 뿐이었다.


“승훈이? 너 승훈이 맞지? 나 임나은! 기억해? 중학교 때 같은 반?”

“응.”


그녀의 머리카락, 아니면 옷에서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향기는 승훈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한테서 피어나는 향기는 승훈에게 연보랏빛과도 같았다. 그는 나은의 향을 맡으면 연보랏빛을 떠올린다. 승훈은 머릿속 연보랏빛 구름을 타고 과거를 여행했다. 향기가 나는 연보랏빛 구름을 탄 그는 아득한 과거를 내려다보았다.


면접장에서 다리를 떨고 있는 20대 후반의 모습을 지나쳤다. 후임에게도 괴롭힘을 당하던 군 시절 역시 빠르게 지나쳤다. 별 볼 일 없었던 대학에서의 2년, 공부하는 척하느라 바빴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 3학년 때의 시간을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승훈은 나은을 좋아했다. 나은은 평범한 아이였다. 승훈은 나은의 그런 점이 부러웠고 좋았다. 중산층 집안, 아주 이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쁜 얼굴. 불량하지도, 모범생도 아닌 성적과 행실. 그 시절 승훈은 여자로 태어난다면 나은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름은 기억하기 힘들지만, 나은이는 반의 잘생긴 남자아이 두 명과 친하게 지냈었다. 승훈은 그들 또한 부러웠다.

그는 왜 평범한 것을 동경하게 되었을까?


연보랏빛 향기에 취한 참에, 그는 더욱 과거로 가보기로 한다. 초등학생인 승훈은 검은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범한 빌라의 1층, 문을 연 그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를 깨웠다.


“아빠. 사 왔어요.”


검은 봉지 안을 들여다본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빨간색 뚜껑 있는 거로 사 오라고 안 했나?”


부엌에서 어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잔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애한테 술 심부름시키지 말라고 했지.”

“죽고 싶나. 목소리 낮춰라.”


아마 그날 승훈의 턱에 흉터가 생겼을 것이다. 흉터가 아물면서 그의 마음은 죽어갔다. 그의 마음에는 흑과 백만 남았다. 승훈은 별 볼 일 없는 과거 여행을 마치기로 결심했다. 나은의 목소리가 그를 공상에서 꺼내었다.


“야!”

“응?”

“사람이 말하는데 왜 가만히 있어. 넌 반갑지도 않아?”

“반가워. 잘 지냈어?”

“장난해? 잘 지냈겠어? 서른 넘어서 여기에 줄 서 있는 것 보면 몰라? 아무튼, 되게 반갑다. 여기서 일하는 거야?”

“응. 잠시.”


나은은 승훈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교실에서 나는 분필의 향, 낡은 의자와 책상의 향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 취한 그녀는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승훈은 혹시 자신에게 번호를 알려주기 위해 가방에 손을 뻗은 것은 아닌가 착각했다.

'나은이도 이제 담배 피우는구나.'


나은은 자신의 손가방을 바라보는 승훈의 시선에서 ‘그것’을 느꼈다. ‘그것’은 함께 학창 시절로 돌아가자는 의미, 다시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자는 암시, 그리고 승훈이 자신과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는 의지였다. 나은의 친구가 그녀에게 팔짱을 낀 후 나은이는 클럽으로 빨려 들어갔다. 승훈은 그녀가 들어간 클럽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떨까 생각에 빠졌다.


가끔 승훈의 공포는 현실이 된다. 입구에서 빠져나온 나은은 자신의 명함을 승훈의 얼어붙은 손에 건넸다.

나은이 다시 클럽으로 돌아간 후, 승훈은 미영의 말대로 호텔 문을 닫았다. 미영의 옆으로 돌아온 승훈은 핸드폰을 바라보는 미영에게 물었다.


“수건 정리할까요?”

“그냥 놔둬요. 근데 승훈 씨 그거 알아요?”

“뭐요?”

“13층에서 귀신 나온다는 소리 들어봤어요?”

“아니요.”

“승훈 씨는 어차피 귀신 안 믿죠?”

“네.”

“호텔 사장이 13층에서 사람 죽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클럽에 금수저들이 13층에 모여서 마약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무섭지 않아요?”

“안 무서워요.”


승훈에게 미영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는 나은이 건네준 명함이 주머니에 잘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지러움에 한 시간이 1초와 같이 흘러갔다. 그날은 누군가 승훈의 몸을 빌려 바닥을 닦고, 객실을 정리한 느낌이었다. 아침 6시가 되어도 해는 뜨지 않았다. 승훈은 평소답지 않게 제시간에 호텔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클럽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술에 취해 쓰러진 인간들과 깨진 술병, 셀 수 없는 담배꽁초. 귀에서는 아직 음악의 베이스가 진동하는 기분이었다.


승훈은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그의 동네에 내려 그를 할퀴는 찬바람도, 뒤늦게 뜨는 태양도 그의 정신을 깨우지 못했다. 집에 들어선 승훈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 이불속에 숨었다.

'연락해 볼까?'

'내 취미는 어떻게 설명하지?'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은데.'

'나은이와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까?'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것 아닌가?'

'전셋집이라도 구할 돈은 있어야겠지?'


잠을 잔 것인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 승훈은 다시 한번 하늘이 어두워지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급하게 망치와 검은 모자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밥 먹고 나올걸.'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죽어있던 무엇인가가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죽여야 했다. 누군가와 그의 마음을. 강화도 부근에서 알 수 없이 부패한 사체들이 많이 발견되며, 승훈이 걷는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가 말하는 마법의 수로에 가까워졌을 때, 그는 술에 취해 벤치에 누워 있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에 먹잇감을 두고 나은을 떠올렸다.

'나은이를 만나려면 이런 취미는 관둬야 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온 승훈은 피 묻은 망치를 베이킹소다를 이용해 닦아냈다. 옷과 모자, 장갑 등을 검은 봉지에 넣어 보일러실 한구석에 던져두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도대체.'


마음이 죽은 남자로 사는 것이 훨씬 편했던 승훈이다. 그는 TV를 보고도 웃지 못했다. 모든 것이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랐던 승훈이다. 그는 나은의 명함을 바라보았다. 색채가 없는 자기 삶에 보랏빛, 아니면 더 많은 색채가 담길 수 있는 기회였다. 기회는 희망으로, 희망은 고통이 되었다.



12월의 추위에 호텔을 향한 그의 비루한 출퇴근은 이어졌다. 고작 며칠 사이에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TV와 핸드폰 게임은 더는 재미가 없었다. 버틸 만했던 미영과 과장의 잔소리를 참는 게 점점 힘이 들었다. 승훈은 자신에게 휴가라는 권리가 있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는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승훈은 자리에 누워 지하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에 나은의 명함을 비췄다. 그는 나은을 만났던 날을 다시 떠올렸다.

'나은이가 클럽에 들어간 후, 생각했지. 나은이가 다시 클럽에서 나온다면 어떨까. 혹시 누군가 나의 기도를 들어준 걸까? 다시 한번 기도해야 할까?'


승훈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친 그는 TV를 켰다.

TV에는 저명한 동기부여 강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변화는 원래 힘든 것입니다.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는 순간이 가장 힘든 법입니다. 그러나 분명, 분명히 모든 것은 나아질 것입니다.”


승훈은 TV 속의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느꼈다.

TV 속의 강사는 승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승훈은 게임만을 위해 존재하던 핸드폰을 꺼내 나은의 번호를 입력했다.




공원 벤치에 앉은 승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따뜻한 햇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따스한 햇살 아래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앞에 펼쳐진 보랏빛은 나은이 이곳에 거의 다 왔음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그는 까먹고 살았다. 세상에는 색깔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색을 보기 위한 햇빛을 구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핸드폰 카메라를 보며 머리를 다시 정리했다. 이 사이에는 낀 것이 없는지, 혹시 면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 있는지. 그는 턱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에게 이런 흉터가 있어도 상관 안 해.'


그는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나은을 볼 수 있었다. 클럽 앞에서 봤던 날과 같은 가죽 재킷과 청바지. 검고 긴 머리와 하얀 피부. 오히려 그녀가 옆에 앉았을 때 승훈은 떨리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은의 목소리는 그에게 레몬 향과도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추운데도 어떻게 꽃들이 피지? 저거 개나리인가?”

“그런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니까 추운데 걸을래?”

“그래.”


그들은 햇살 아래 공원을 걸으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은 역시 그녀만의 고민이 많아 보였다. 어째서인지 나은은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승훈의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어 했다.


“그러면 혼자 사는 거야? 진짜 부럽다.”

“왜?”

“완전 자유잖아. 집에서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면 부모님은 어디 계시는데?”

“몰라. 엄마는 가끔 연락하는데, 아빠는 노숙자가 되었대. 군대에서 그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야.”

“힘들었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나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나?'


승훈은 눈물을 참아냈다.


“아니야. 네 말이 맞아. 혼자 살면 자유로워서 좋아.”


잠깐의 산책이었지만, 그날 이후 승훈의 삶은 변했다. 그는 나은 앞에 자신 있는 남자가 될 수 있기를 맹세했다. 그날의 산책 이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은 매일 전화기를 넘어 대화를 나누었다. 승훈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나은의 목소리가 음악을 듣는 듯 좋았다. 승훈은 희망이라는 밧줄을 잡아보기로 했다.


그는 호텔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정의 악취미 또한 그만두었다. 나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햇빛을 받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그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 나은과 통화를 하는 시간에 TV를 볼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꿈만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그가 바라는 것이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들인지 알지 못했다. 화려한 집이나 직장이 아닌, 자신을 이해해 주는 한 명의 사람. 승훈은 전화기 너머 들리는 나은의 웃음소리에 질문을 던졌다.


“24일에는 뭐 해?”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친구가 파티 있다고 초대해서 거기 갈 것 같은데?”

“어디?”

“너 일하던 호텔 밑에 클럽!”

“무슨 파티인데?”

“나는 잘 몰라. 친구 따라서 가는 거라서. 너는 예슬이 기억 안 나?”


작은 실망이 있었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나은아 나 갑자기 호텔에서 전화 왔네? 다시 전화할게.”

“응. 연락해.”

“예.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어, 승훈 씨. 그만둔 사람한테 이런 부탁하는 거 진짜 미안한데. 알다시피 24일은 엄청 바쁠 것 같거든.”

“예. 알겠어요. 그날 뵐게요.”

“진짜 고마워 승훈 씨. 그날 일당은 내가 현금으로 더 얹어서 줄게. 정말 고마워.”

“예.”


전화를 끊은 그는 청테이프를 들고 보일러실로 다가갔다. 그는 테이프로 문의 모든 틈새를 막아냈다. 어둠을 숨긴 그곳의 문을 잠근 그는 핸드폰 게임을 삭제한 후, TV 리모컨의 배터리를 빼냈다. 책상에 앉은 그는 나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공부 조금만 하고 바로 전화할게.'


그의 꿈만 같은 일상은 이어졌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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