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유배지

돌아가고 싶은 순간

by 하얀 나비

아버지가

목수일을 하셔서

구입하신 단독주택은

골목 비탈길에 있었다.


그곳은 중학교 때 생모 편을

들었다는 벌로 오게 된

나의 유배지가 되었다.


내가 시골집을 떠나면서

만들어 놓고 떠나온

자신이 낳지 않은 자식에 대한

깨진 신뢰를


어린 동생이 어찌

회복할 수가 있겠는가.


가엾은 어린 동생은 내짐까지

지게 되었다.


내가 있게 된 반지하 그 방에는

골목길과 높이가 같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골목길에서 방이

훤히 들여다 보여

항상 커튼을 치고 있었다.


문 틀에는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겨울엔

찬바람이 들어왔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짐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말소리도

바로 옆인 것처럼

잘 들렸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방귀를 뀌면서 걸어갔다.

웃기기보다는 그 소리를

숨어서 듣게 된 내가 미안했다.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나고

그게 굴러가면서

조용한 골목길이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창문에는 녹슨 창살이 있었지만

한동안 길옆에 누운듯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 방이라고 말할 것이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유배되어 온 나를

아무도 보살피지 않았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새엄마의 언니가

오빠의 밥을 해주셨고

갑자기 굴러들어 온 나는 객식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유령처럼 밥을 먹고

내방으로 사라졌다.


시골집도 눈에서 멀어지니

서서히 잊혔다.


작은방 한가운데 천장을 보고

반듯이 누우면

나만의 숨 쉬는 공간이 되고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새엄마가 내게 주신건

벌이 아니라 선물이었고 자유였다.


그 독방에서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공주처럼 살 거고

이슬만 먹을 거고

행복하게 될 거라고…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그 좁은 방을 그리워했고

그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과 가까운

스위스 언덕 위

햇살이 가득한 푸른 초원

색색의 작은 꽃들이 깔린 들판에

지금 누워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었던 그


뜻밖에도 그 방에서

엄마의 품속과 같은

평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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