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사랑 최종화

나의 첫사랑 나의 안개꽃에게

by 하얀 나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 덜 춥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자 여전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제 그 소리는 고독의 신호가 아니라 살아있는 집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그는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아내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평생 꽃만을 관찰하던 눈으로, 비로소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눈가에 잡힌 미세한 주름, 입술 끝에 맺힌 고단함, 그리고 여전히 첫사랑의 흔적을 간직한 맑은 눈망울까지.


"뭐 하는 거야?"


아내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려 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턱을 잡아 눈을 맞췄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줘. 당신을 그려야겠어."


그는 작업실에서 낡은 스케치북과 가장 부드러운 연필을 가져왔다. 책상 위엔 아까 보았던 마른 안개꽃 대신, 생생한 안개꽃 다발이 화병에 꽂혀 있었다.


서걱거리는 연필 소리가 고요한 거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식물세밀화가는 원래 선 하나를 긋는 데도 수만 번의 망설임을 담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정직하게 옮겨 적었다.


"안개꽃은 말이야, 멀리서 보면 그냥 하얀 덩어리 같지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서 보면 꽃송이마다 저마다의 잎맥이 있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있어.
당신도 그랬는데... 내가 너무 멀리서만 당신을 "배경"으로 보고 있었나 봐."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 스케치북 위로 떨어졌다. 종이가 살짝 울퉁불퉁해졌지만 그는 지우지 않았다.


그 눈물자국마저 그녀라는 존재의 가장 진실한 기록이었으니까.


밤이 깊어갈수록 그림 속의 그녀는 생기를 되찾아갔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초상화였다.

한 번에 완성할 수 없는, 남은 평생을 다해 조금씩 덧칠하고 채워나가야 할 사랑의 기록.
그는 그림 하단에 날짜와 함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나의 첫사랑, 나의 안개꽃에게》

창밖의 어둠이 걷히고 희끄무레한 새벽빛이 거실로 스며들었다. 식탁 위 안개꽃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제 냉장고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나란히 앉아 숨 쉬는 두 사람의 호흡 소리였다.


안개꽃 눈이 온 세상을 덮은 겨울밤이 은은하고 산뜻한 안개꽃 향기 속에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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