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숙려기간 아니 정리의 시간
이혼, 아이 스스로 선택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정법원이란 델 처음으로 가보았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도 속으로 울었다. 도장은 부동산계약이나 통장 만들 때마다 찍는 도장인 줄 알았다. 설레고 기쁘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가장 처절한 고립의 순간이자 통증의 순간을 맞이하려는 시간의 노예계약서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각자 다른 길로 가기 위한 마주침이다. 그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나는 애써 웃었다. 슬프지 않다고, 당신이란 사람 보란 듯이 행복해질 거라고 속으로 천 번은 다짐한 마주침이다. 법 없이도 잘 살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법정 앞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번을 기다리다 법원에 이혼하려고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다들 얼굴이 죽상이었다. 보기 싫었다. 죽자고 싸울 때는 이혼이 그다음 순번이 아니었나? 자기들 잘 살려고 그렇게 맘대로 해놓고서 이혼하는 당일까지 못난 모습투성이의 얼굴들을 하고 왔는지 차례를 기다리며 나 역시 이 부류에 속해 앉아 있음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참 못났다.
"47번 들어오세요"
"합의 이혼이 맞습니까?"
"자녀 양육자 ㅇㅇㅇ씨가 맞습니까?"
서로의 합의하에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5분, 5분도 안 걸리는 판결이었다.
지난한 싸움의 결말은 5분이 다였다.
서류를 작성하고 이혼 숙려기간을 두고 3개월 후 취소 또는 관공서에 서류를 등록하면 자동 이혼이 성립된다.
허탈했다. 무표정의 그가 먼저 자리를 비웠다. 나는 법원 앞 공터에 나와 다시 한번 법원 앞을 올려다보았다.
무겁고 힘든 시간들이 법정의 저울 앞에 무게를 달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공평했을까? 내 삶이 저울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울어진 삶을 보란 듯이 비웃고 있는 저 동상을 등지고 첫발을 내딛었다.
이를 악물고 버틴 시간들이 다 속절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버텨내고자 한 목적이 사라지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는 방향을 잃었다.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도, 아이들을 건사하려 했던 이유도, 무너진 삶들을 다시 펴려 안가님을 써왔던 시간들도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참담했다.
그러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싸워야 했다.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아이들보다 자기 앞의 걱정들로 불안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어른의 불안정한 마음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대로 멍들어 가고 있었다.
10살, 11살의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해서 따로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었다. 11살의 아이에게 "엄마 아빠 따로 살게 됐어" "미안하다.."라고 말하자 아이는 예상했다는 듯이 "이해해"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해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애써 꺼내본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아이가 이상했다. 씻지 않은 떡진 머리,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이의 모습, 날카로워진 눈빛...
그랬겠지. 엄마 없이 아빠하고 지내면서 뭐 하나 제대로인 게 없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엉망이었을 테니...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달래 본다. 햇볕을 쪼이고 말을 걸어본다. 일주일간 먹고 자고를 반복하던 아이는 우울증처럼 보였다. 초점 없는 무기력한 모습 이혼뒤에 거쳐야 할 과정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부딪히니 갑갑했다. 이럴려고 그런 선택들을 감행해야 했을까? 나만 억울하고 멍들면 된 거지 아이들까지 이렇게 망가트려야 했을까.. 또 얼마나 이 시간을 걸어야 하는지 내 몸 하나 추스리기에도 벅찬 오늘인데..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난 아이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먹고 자고 했다. 어떤 말도 다 소용없는 시간일 테니...
아이는 방학 한 달을 보내며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다. 아빠집에서 엄마집을 오가며 자연스레 함께 살고 싶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기를 기도했다. 마음 편한 곳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아이의 거쳐를 정해놓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혼 후에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아이들의 마음을 정리해주어야 하는 시간은 더없이 길게 느껴졌다. 사춘기도 거쳐야 하고 이 모든 시간들에 마음을 다 잡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까지가 이혼의 과정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선택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른의 선택이 지나간 후 아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시간 역시도 폭풍우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이혼의 시간들이 알려주었다. 아이들의 선택은 엄마로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집에서 아빠집, 할머니 집을 오가며 아이들의 방황은 길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