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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마음아 Sep 08. 2024

"엄마, 일어나" "일어나야 해"

나를 깨우는 아이의 목소리

"암입니다." 예후가 좋지 않으니 "수술하셔야 합니다."

그 해 겨울은 유독 몸이 많이 아팠다. 점점 바닥에 드러눕는 횟수가 잦았다. 원래 약골에다가 수시로 피곤에 절어 살아왔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날도 그렇게 감기에 몸살 증상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왠지 이번엔 자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더 무겁게 처지는 증상이 오래갔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엘 갔다. 건강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고 내분비내과로 바로 검진을 요청했다. 암이었다.


암? 4명 중 한 명이 걸린다는 암? 그게 나라고? 참 기가 막혔다. 좋은 일은 어렵게 찾아오던 확률이 불길하고 불행한 일들은 내 삶에 아주 기가 막히게 꽂혔다. 명중이다. 머리가 새하애 졌다. 뭘 어쩌라고? 나 겨우 겨우 살고 있다고! 그런 내게 왜? 정말 신이 원망스러웠다. 수술은 한 달 뒤 해맞이 날. 1월 1일 첫날부터 입원수속을 밟았다. 속옷 몇 장, 이불, 개인물품을 챙겨놓고 3, 4학년이 된 아이들을 시댁에 맡겨 놓고 나왔다. 다들 연말이다, 신년맞이다 행복한 시간들을 기대하던 날인데 나는 신년부터 병원행을 맞이하다니 날짜도 참 기가 막히게 받아놨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년계획?

내 앞에 내일이란 게 있었을까?

뭘 어떤 걸 그렇게 자신하고 살지?

당신 앞에 생을 마치 맡겨 놓은 것처럼 우습지 않나?


매일같이 내일 뭐 하지 내일 뭐 하지 하면서 오늘의 소중함을 잊고 지낸다. 365일이 다 내 것 인마냥

하지만 그 착각을 무너뜨린 게 바로 오늘이다.


1월 1일 5시 입원 수속을 밟고 병원을 둘러보았다.

천지가 환자복을 입고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보였다.

너 어디로 가는 거니?

6인실, 암환자병동이었다. 출입문이 열렸고 호실 앞에 내 이름을 꽂아 넣는 간호사와 마주쳤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병상에 앉았다. 이미 입원한 5명의 암환자를 보았다. 죽은 입술, 헝클어진 머리,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몸... 그리고 이제 막 들어와 복잡한 심경으로 마주하고 있는 나...

1월 2일 오전 7시 첫 수술환자가 나다. 2018년 올해의 첫 수술환자였다. 뭔가 이상했다.

모든 '첫'경험들은 설레고 환상적인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산산이 박살 내주는 순간이었다. 5시간의 수술. 과장님이 미리 방문해 주시며 안심을 시키셨다. 7시에 들어간 내 수술은 12시가 넘어서야 중환자실에 머물다 다시 암환자병동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자꾸 졸릴 수 있으니 잠들지 않도록 깨워야 한다는 책임을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맡아주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야 해"


아주 오래 잠을 자려는 듯 나는 지속적으로 잠이 밀려들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첫 마주친 내 아들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7일간의 병동생활동안 아들은 내 곁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함께 병실생활을 하고 있던 이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자갈치 사장님, 홍콩에서 유방암 수술을 하러 왔다는 동생, 이런저런 사람들의 투병생활을 한 병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가정이 있는 엄마였다.


한날은 옆에 있던 중년의 이모가 아이에게 3만 원을 건네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말을 해왔다.

눈을 감고 자려는 엄마에게 하루종일 

"엄마 일어나" "얼어나야 해"라는 두 문장은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고 한다.


아들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 안을 흔들어 놓았다고...

우린 모두 누구의 엄마이지 않냐고... 작고 작은 아이가 엄마를 깨우는데 그 소리가 자꾸만 나를 깨우는 소리 같았다며 숨죽이며 울었다고 한다. 그랬다. 우린 나 자신이기도 하면서 엄마이기도 하다. 여자라는 말보다 더 강한 엄마라는 말...

무너져 버리다가도 다시 일어나야 할 근원 엄마... 그것이 내가 나로서 일어나야 할 당연함이었다.


병실문을 나올 때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화이팅을 외쳤다.

다시 주어진 삶 멋지게 잘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맑게 숨쉴수 있는 그날은 내겐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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