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과정은 생각보다 더 날카롭고 예민했다.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내가 걸어온 지난날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날의 나는 존재했는가? 내가 달려온 시간들은 무엇이었나? 끝도 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내렸다. 감정이 일어날 새 없이 생각이 먼저 달려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너 뭐 했냐고! 그 시간 동안 너는 어디에 있었냐며 쉴 틈 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의 비수 같은 말에 질세라 나도 퍼부었다.
" 이 모든 게 다 니 탓이잖아!"
"이게 왜 나 혼자만의 탓이야! 당신이 그때 그런 사고만 안쳤어도!"
"내 생에 널 만나게 가장 최악이야!", " 아주 징글징글 해!"
가장 확실했고 가장 소중했던 우리가 자상 최대의 원수가 되는 시간이었다.
20여 년을 꽉 채운 날이었다.
우린 싸울 것이 많았다. 가난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행복한 가정은 모든 것이 다 행복의 요소가 되고 불행한 가정은 하나하나가 다 싸울 껀덕지였다.
그랬나 보다. 우리가 헤어져야 할 이유가.
모든 이혼의 끝이 아름다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힘든 고비도 잘 버텨왔는데... 왜 이렇게 모진 말과 날 선 감정들이 오고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어져도 생판 모르는 남보다 조금은 더 좋아야 할 관계가 아닐까?
우리에겐 아직 아이들이 남았으니까...
나 역시 헤어진 이후에도 남편의 탓으로만 돌리고 싶었다. 모든 잘못된 원인이 내가 아니라 너여야만 내가 좀 살 것 같았다. 잘 살려는 몸부림은 오직 나만 했던 것이고 그는 늘 한 발을 뺀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없었던 것 같아 보였다. 그 허기짐을 매번 느끼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억울했고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늘 내 쓸쓸함만 보며 살았다. 당시에 그의 아픔과 쓸쓸함을 보지 못했다.
그가 느꼈을 사랑의 부재를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 절반의 몫이 나에게 있었음을 이혼하고 난 뒤에 알았다. 한참을 욕을 하고 또 이해도 했다. 그런 양가감정이 계속되었다. 방법이 서툴렀던 나. 이해가 빈약했던 나. 주변을 살펴보지 못했던 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대로 드러났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렇게 몇 년이 더 흐른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헤어져줘서 고맙다고, 당신이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 애걸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당신이 해줘서 감사하다며 최초로 이혼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이웃이 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도 나도.
심리학에서 슬픔을 겪어내는 '애도의 5가지 단계가 있다. ‘애도의 5단계’ 또는 ‘ 모든 상실을 받아들이는 5단계’로도 알려진 이것은 ‘죽음학의 대가’로 불리는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을 수천 명 상담한 뒤 그들이 거치는 심리적 단계를 공식처럼 정립한 것이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았다.
고통스러웠다.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다. 충격과 배신감이 컸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그러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모든 걸 당사자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또 나에게도 화가 잔뜩 났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 회회스러움, 일상의 회피와 잠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
그러면서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의 타협과 우울이 반복되는 양가감정...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 결국 그 모든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모습에서 비쳤을 나에 대한 결핍의 순간들, 무지했던 지난날, 부족했던 그 모든 행동들의 결말이었다. 그가 말했던 '내 탓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라는 사람의 취약성을 깨닫고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나의 삶의 의미와 그 모든 행동들에 변화가 필요했다. 그가 아닌 내 문제를 먼저 바라보고 직면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다시 그와 같은 실수는 없어야 하기에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 남은 반을 위해서라도...
나에게 주어질 수많은 기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기필코 다시 일어서야 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갈아엎을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삶에서 얻는 해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