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증명에 기대지 않기
“나는 형편없는 사람, 나는 못난 사람, 나는 쓸모없는 인간.”
이 세 마디가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삶의 문을 닫아버린다.
돌이켜보면 이 무자비한 자기 비난은,
과거 경제 대국을 향해 오직 효율과 경쟁만을 외쳤던 시대의 잔재일지 모른다.
'누구집 자식'과 비교당하고,
'느그집 아버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던 줄 세우기식 사회에서,
개개인의 특수성은 성장의 연료로 갈려 나갔다.
그 덕분에 나라는 부강해졌으나,
많은 이들의 자존감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이제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가상현실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더욱 많은 기회와 새로운 루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비효율적이라 여겨졌던 '개별성과 특수성'이
오히려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산업을 주도할 동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글로,
춤을 좋아하는 사람은 춤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으로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획일적인 정답만이 전부라고 믿었던 관념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인이 가진 색깔과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과 교육 현장은
여전히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여전히 ‘공부 잘해서’, ‘1등 해서’만이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기 안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에 이끌려온 삶을 살기 쉽다.
이제는 그 밀려 있던 삶,
억눌렸던 개성을 겁 없이 펼쳐 나가야 할 때다.
더 이상 가진 것이나 성적으로 줄 세우지 말고,
한 개인이 가진 특수한 상황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개발시켜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외부에 있지 않고, 오직 내면에 있다.
우리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타인에게서 증명받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믿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든든하고 멋진 일이다.
나는 실수해도 괜찮은 사람,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식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주눅 들거나 숨어 살지 않는다.
그 내부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꽃을 피우는 힘은,
외부의 박수나 증명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굳건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갈려나간 내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불교의 부정관과 심리학의 인지적 재구조화는 이런 내면에 인식된 나의 부정적인 관념을 재구성 해주는데 탁월한 면이 있다.
특히 자기 비하가 심하거나 나를 무엇무엇이라고 구정시켜 버려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나는 못된 사람을 "나는 좋은 사람"으로 중화시키는 과정은 심리학적 인지 재구조화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는 '인지적 불균형을 해소하여 심리적 안정에 이른다'는 점에서 부정관의 작용 원리와 깊이 연관성을 보인다.
또 자기긍정확언 역시 자존감, 자신감 결여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훈련이다.
사실 이런 연습이나 훈련을 며칠 한다고 해서 뾰족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내가 진짜로 내 부족한 부분 못난 부분이 내안에서 수용이 될 때까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은 정도의 인식이 되려면 내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의 패턴을 무너뜨릴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빠르게 패턴을 인식하고 바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참을 해도 지지부진한 경우가 있다. 개별적인 차이이자 이 단하나의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복합적인 방법들을 함께 끌어 올려야 그 가능성이 빠르게 열린다.
나 역시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식훈련부터 식생활 개선 환경개선 운동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서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것도 천만 다행으로 부활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통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일상의 행복과 여유가 오랜만에 찾아온 것이다.
혹시나 이 글이 당긴에게 도작했다면 그래서 당신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제발 힘을 내시라
당부하고 싶다. 이 글을 만난 당신은 나보다 더 운좋은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