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이 돌아왔다
“그래. 그렇다니깐. 저번 여름 방학에 준수네는 필리핀 영어 캠프 다녀왔잖아. 그 엄마도 같이 갔지. 여기 남아있음 뭐 해. 더운 데 밥밖에 더 해? 따라가서 푹 쉬다 왔대. 우리? 에이 우리는 뭐 겨울쯤? 아 진짜, 자기네도 같이 갈래? 말레이시아 어때. 응. 조호바루. 거기가 좋아. 심심하면 싱가포르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응. 그래그래. 우리 둘째들만 데리고 가자. 큰 애들은 뭐 학원 다녀야지. 남편? 연말에 잠깐 휴가 내서 들르라고 하면 안 되나? 암튼 자기 일단 생각해 봐. 응? 어, 잠깐만. 집에 누가 오는데? 일단 끊어봐. 이따 다시 걸게.”
뭐지? 이 시간에. 택배는 아까 와서 올 게 없는데.
“집에 있었어?”
“오빠! 이 시간에 웬일이야? 일찍 퇴근한 거야?”
“은실아!”
“왜, 뭐야, 왜 그래?”
“나 회사 그만뒀다!”
“…?”
“나 회사 그만뒀다고! 괜찮지?”
“진짜? 언제!”
“몰라. 씨발. 내일부터 안 나갈 거야. 나 이제 나를 위해 살 거다. 은실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남편 탁계룡과 나 여은실의 새로운, 아니 아주 한 치 앞을 모를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