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재 탁계룡
내 남편 탁계룡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가방끈 짧은 부모님 아래 영어며 한글을 혼자 척척 깨친 아이가 태어났으니 부모님과 일가친척 입에서 ‘천재’ 소리가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식판에서 ‘몰빵’은 위험하다. 하지만 아들의 남다른 떡잎을 알아본 어머님은 ‘우량주’인 그에게 올인했다. 그것이 투자이던, 투기이던 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좋은 것만 입히고 먹였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여려 승부욕이 별로 없던 남편을 채찍질했다. 어린 탁계룡이 공부 외에 한눈팔지 못하도록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버님에게도 탁계룡은 자랑 중의 자랑이었다. 시험만 봤다 하면 아들이 우수한 성적과 상장을 줄줄이 받아 오니 일류대 출신 사무직 동료들 앞에서도 꿀릴 게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들을 물고 빨고 하는 게 아버님의 낙이었다. 그렇게 내 남편 탁계룡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탁계룡은 달랐다. 공부는 여전히 잘했지만 ‘음악’에 빠져버렸다. 그것도 아메리칸 하드록, 그리고 헤비메탈에. 탁계룡은 틈틈이 모은 용돈으로 거대한 스피커에 엘피판을 사들였다. 고등학생 주제에 그랬다. 그러고는 머리를 대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힘들게 집어넣은 지식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술술 빠져나올까 노심초사했다. 그들은 결국 용단을 내렸다. 스피커를 창고로 귀양보냈고 LP판은 상자에 넣어 더 멀리 보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은 탁계룡을 아버님의 일터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그는 봤다. 공장의 거대한 기계와 귀를 잡아먹는 듯한 굉음 사이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시력도 양쪽 1.5이니 아주 제대로 봤을 것이다.
탁계룡의 사춘기는 그날로 끝났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달래주었던 음악을 버렸고, 부모의 한 많아 보이는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대학 하나만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결과는 달콤했다. 부모님이 바라던 의대는 아니었지만, 손꼽히는 명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아들을 ‘길렀다’라는 표현보다 ‘만들었다’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 어머님, 다 큰 아들일지언정 지금도 속으로는 아마 물고 빨고 계실 아버님. 그 두 분에게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었다.
이제 탁계룡에게 남은 일은 승승장구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