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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Nov 18. 2023

40대 편순이의 기록

여기는 민원실_ 교통카드 1




편의점이 지하철 역사 안에 있다. 고로 교통카드 관련해서 심심치 않게 손님이 온다. 교통카드 충전은 오직 ‘현금’만 된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단, 누구만 빼고? 취하신 국민만 빼고.



오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손님이 방문했다. '혹시 어디 불편하신 분일까' 하고 걱정될 정도로 행동이며 말투,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이 말하기 시작한 순간 걱정은 이내 다른 종류로 변해버렸다. 내 코앞까지 훅 들어온 술냄새. 지하철을 타야 한다고 하셔서 교통카드를 꺼내 건넸다. 손님은 신용카드로 결제. 충전은 현금으로만 가능하다 말씀드리니 신용카드로 충전해 달라고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했다. 현금만 된다고. 손님은 이해가 안 간단다. 내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한다. 난 다시 말했다. 교통카드는 카드로 구매 가능하지만 충전은 현금만 된다고. 이 교통카드는 충전해서 써야 한다고.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단다. 뭐가 모르겠다는 거지? 혹시 ‘현금‘이라는 단어를 모르시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렇게 이 설명을 세 번 이상 반복했다.



내 목소리와 말투가 처음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난 열심히 말했고 손님은 열심히 모르겠단다. 심지어 그분은 뒤에 서 계신 다른 손님께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뒷분께 이분과 일행인지 여쭸더니 아니란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마침 난감함보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슬슬 느껴졌던 터라.



나는 세 번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한 후 내용을 바꿨다. 맞은편 상황실(안전관리실)에 가셔서 말씀하시라고. 그리고 이미 결제한 교통카드도 환불하시라 권해 환불해 드렸다. 손님은 썩 내키지 않는 기색이지만 감사하게도 가게에서 나가주셨다. 그러면 됐지. 다음에 오시면 더 나은 상황이 되기를. 별 큰일 아닌 듯 하지만 일하면서 처음으로 조금 서늘했다. 말투나 행동, 술냄새보다 제일 서늘하다고 느낀 건, 그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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