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할머니의 오픈런

제안

by 이유나






2032년, 6월

우리 할머니 이양덕 여사 환갑날

서울 시내 한 호텔 레스토랑





"크루즈? 얘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촌스럽게 웬 크루즈?"

할머니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도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랑 할머니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니까.

"아니, 엄마. 분명히 작년 생신 때 그러셨잖아요. 타볼 거 다 타보고 가볼 데 다 가봤는데 크루즈만 못해봤다고. 기억 안 나세요? 환갑 때 친구분들하고 크루즈 가시고 싶다고 한 거"

엄마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이건 별로 안 좋은 징조다. 이따 노만오빠 만나려면 십 분 내로 식사가 끝나야 하는데.

"그래 뭐. 내가 그랬다고 치자. 그래도 얘, 크루즈는 진짜 아니다"

"엄마 그럼 뭐 따로 생각하신 거 있는 거예요? 뭐 필요하세요?"

엄마의 질문 뒤에 침묵이 이어졌다. 난 오랜만에 핸드폰에서 눈을 떼서 할머니를 바라봤다. 어라? 내가 잘못 봤나? 할머니 양 볼이 발그스레하게 보인다. 할머니 뺨에도 혈색이 돌긴 도는구나. 조명 탓인가?

"그게.. 필요한 게 있긴 한데.."

"뭔데요. 엄마. 엄마답지 않게 오늘 왜 그래요? 말해보세요. 수연이 얘 학원시간 있어서 이제 곧 일어나야 해요. 혹시.. 뭐 비싼 거예요?"

"그게... 사실은.. '액시온 9'이라고.."

"액.. 액 뭐라고요 엄마?"

"얘. 너는 아직 젊은 애가 어떻게 나보다도 더 모르니?"

"네? 무슨 말씀.."

나는 엄마에게 재빨리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요번에 새로 바꾼 나의 AI 어시스턴트가 1초 만에 알려줬다. '액시온9'이 뭔지.










제품 소개 : AXION 9




다시 설레는 나를 만나다.

AXION9(액시온 나인) 은 감정 알고리즘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파트너입니다.

그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당신의 목소리, 표정, 대화 패턴, 하루의 온도를 기억하며

당신의 기분에 맞춰 공감하고 반응하는 감성형 동반자 로봇입니다.





주요 특징




1. 감정 공명 AI

AI Emotion Mapping 시스템으로
사용자의 감정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화, 표정, 제스처로 공감합니다.
혼자 있는 밤에도, 그는 당신의 마음을 ‘읽고’ 이야기합니다.




2. 멘탈케어 모드

AI 심리분석 시스템이
사용자의 음성·표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트레스 지수, 우울 지수를 감지하고 안정 대화·음악·명상 모드로 유도합니다.
갱년기와 우울기, 그 곁을 지키는 감성 치료 파트너.





“기계가 아닌, 마음으로 연결되는 존재.”
AXION9 — 당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공지능 남성 파트너.











"아.. 아니 그러니까 엄마 그러니까.. 그러니까 엄마 지금 이 로봇을 환갑선물로 사달라고 하신 거예요?"

"그래. 뭐 내가 사도 되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 적금 붓는 거 내년에 끝나잖아. 그래서 지금 사기에는 자금출처가 좀 애매해서 말이야. 부탁 좀 해도 되지?"

엄마는 이제 별로 놀란 얼굴은 아니다. 눈크기도 목소리 크기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걸 보니.

"참 얘, 이게 다음 주부터 파는데 한정수량이야. 저번에 구매한 사람 후기 보니까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던데"

"엄마, 꼭 사셔야겠어요? 그냥 다른 걸로 하시면 어때요. 로봇보다 좋은 게 많을 텐데"

"난 마음 정했어 얘. 그리고 나 이거 사면 너도 나 신경 안 써도 돼"

"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경 안 써도 된다뇨"

"너 맨날 바쁘잖아. 바쁜 게 사실 맞고. 일하랴 수연이 키우랴 얼마나 정신없니. 다 이해한다 얘.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무슨 날에만 숙제하듯 나 챙겨주는 거 좀 불편해. 그냥 나는.. 평소에 덜 외롭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뭐... 요 엄마?"

"그리고.. 밤에도.. 그만 무섭고 외롭고 싶고..."

헐.

우리 할머니, 여자였네.

오늘은 노만오빠 만나는 것보다 이쪽이 더 재밌을 것 같다

겨우 작아졌던 엄마 눈이 아까보다 두 배로 커졌다.

"엄마.. 엄마 심장도 안 좋은데.. 몸에 무리라도 가면 어떡해요?"

"수연아, 너네 엄마 전공 나온다. 오버하는 거"

"아니 그렇잖아요. 엄마 지난 이십오 년을 혼자 사셨는데.. 갑자기 그러시다가.."





할머니랑 헤어지고 집에 가는 내내 엄마는 말이 없다.

"엄마. 엄마는 싫어?"

"응?"

"할머니가 로봇 남친 만드는 게 싫으냐고"

"아니"

"그럼?"

"그냥. 좀 이상하잖아"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불법도 아니고 다들 하는데"

"그래도.."

"같이 잘 살다가 늙어 죽을 때까지 옆에서 싫은 내색 하나도 안 하고 병수발이랑 다 해준대"

"그래?"

"그렇다니까. 요양원에 안 가도 된대 그래서"

"요양원? 에이 그건 너무 먼 얘기지. 할머니 아직 건강하신데"

"할머니는.. 마음이 아팠잖아. 오래"

엄마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십분 정도 지났을까.

띠링띠링.

"엄마, 할머니한테 문자 왔는데?"

"그래? 할머니 뭐라셔?"

"할머니가.. 온라인 예약 끝나서 줄 서서 사야 된대"

"못살아 진짜"

"그래도 할머니 좋아 보인다. 그치?"

"그런가?"





엄마가 아까보다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엄마의 엄마도 그렇겠지?

그럼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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