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간의 연애
핸드폰이 울린다.
아니, 운다. 아니, 아예 발작을 한다.
띠링.
띠링.
띠링띠링띠링띠링.
이건 알림이 아니다.
이건 거의 구조신호다.
나는 이불속에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뒤척인다.
무시하면 끝날 일처럼 굴어보지만 안다.
이건 누가 작정하고 보내는 거다.
손가락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걷어찰 이불도 없다. 이미 반쯤 탈주했다.
대신 허공을 향해 굵은 다리를 한 번 시원하게 휘두른다.
아침 운동. 공기 타격 1세트.
베개 밑의 핸드폰은 핫팩 저리 가라다.
기기 노후 때문인지,
영상을 웃도는 날씨에도 장판을 고온으로 틀어놓은 내 탓인지,
아니면 지금 쏟아지는 알림의 분노 때문인지.
터지기 직전의 작은 폭탄처럼 뜨끈하다.
누구야.
이 시간에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는 인간은
지구상에 많지 않다.
화면을 슬쩍 올려본다.
인스타 디엠.
도배.
범인은 늘 같다.
남의 인생, 특히 남의 '망한 인생'에 대해 학구열이 남다른 여자.
김땡초.
김땡초가 아침부터 이렇게 디엠을 퍼붓는다는 건
단 하나다.
사건 발생.
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은—
높은 확률로.
나다.
“뭐야, 대체!”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눈이 아직 현실을 거부 중이다.
실눈을 최대한 구겨 짜내듯 뜨고, 땡초의 메시지를 읽는다.
야! 조장은!
너 완전 망했더라?
뭐 했냐 어젯밤에!
소개팅하고 집에 간다더니 어느 집에 간 거임?
아.
슬픈 예감의 법칙 같은 거 들먹일 필요도 없다.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서 읽어도,
천천히 음절 단위로 곱씹어도,
결론은 하나다.
난. 망했다.
뭘로 망했는진 모르겠지만
망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김땡초의 디엠은 늘 그렇다.
걱정인지 비난인지 애매한 톤.
그 메시지를 스크롤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앱 하나를 연다.
아이콘은 심플하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리뷰인간〉
수년 전 출시.
전 세계적 대유행.
SNS 다음 단계,
관계의 최종 진화형.
이 앱은 간단하다.
인간을 리뷰한다.
별점, 한 줄 평, 장문 분석,
해시태그까지 가능.
단, 조건이 있다.
남의 리뷰를 읽고 싶으면
내 리뷰도 공개해야 한다.
공평하다.
아주 공평하게 잔인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기로 ‘허용’을 누른다.
하지만 이건 일반 겨자가 아니다.
생와사비급이다.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를 싫어했던 사람,
한 번 술 마신 적 있는 사람까지
모두가 나를 평가한다.
“자기애 과다.”
“술버릇 별로.”
“은근 계산적.”
“생각보다 웃김.”
“생각보다 안 웃김.”
“그냥 생각보다 별로.”
원색적이다.
솔직하다 못해 생살을 벗긴다.
사람들은 리뷰 몇 줄 보고
혀를 내두르며 탈퇴 버튼을 찾기도 한다.
물론,
버티는 인간이 더 많지만.
왜냐고?
남이 나를 뭐라 했는지보다
남이 남을 뭐라 했는지가
더 궁금하니까.
나는 침을 삼키며
내 프로필을 눌렀다.
제발.
어라?
평점은 그대로네?
그런데—
어제 받은 리뷰가 오늘의 핫 리뷰?
조회수 8만.
미쳤다.
이건 내가 망한 게 아니라
공론화된 거다.
나는 나를 핫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아.
기억난다.
이 퇴폐 눈깔.
사연 백 개쯤 품고 태어난 것 같은 눈.
어두운 조명 아래 있으면 자동으로 영화 한 편 찍히는 타입.
근데 인정.
비주얼은 여전히 괜찮다.
그래서?
뭐라고 써 재꼈나 보자.
그녀는 용감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구석구석을 탐색했습니다.
탐색?
뭘 탐색해?
내가 고고학자냐.
심장이 덜컹한다.
나는 실눈을 뜨고, 단어를 조심스럽게 씹어 삼킨다.
우리가 시간을 보낸 라이브바는 지하에 있었습니다.
좁고 가파른 계단.
우리는 끝까지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계단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래…
그녀의 과감한…
평소 리뷰를 안 쓰지만 이번엔 일부러 시간 내 씁니다.
아니.
여기서 왜 끊어.
과감한 뭐.
뭐가 과감한데.
이 인간이 미쳤나.
나는 사람이 속에서 천불이 수직으로 솟구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불이 아니라 용암이다. 지금 내 위장에.
그때.
짧은 벨소리.
그 인간이다.
퇴폐눈깔.
오호라.
용감하네.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 인간이 무슨 말을 할지.
“사귑시다. 조장은 씨.”
“네? 뭐라고요?”
이건 무슨 장르 전환?
“우리 어제 처음 만났잖아요. 호호.”
자동 방어 웃음이 나왔다.
“전 사실 조장은 씨 예전부터 잘 압니다.”
뭐?
“조장은 씨가 단 리뷰들도 다 읽어봤어요.”
심장이 철렁.
“인간이 아니다 싶었죠.”
와.
이건 고소감이다.
“너무 가식적이어서요.”
정통으로 맞았다.
“근데 어제 직접 봤어요. 인간미."
잠깐.
내가 뭘 했지.
“맘에 들어요.”
이 인간 뭐라는 거야.
“아니 호호, 인간이면 당연히 인간미가 있죠. 아님 무슨 미가 있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직구는 이미 명치에 꽂혀 있었다.
맞다.
난 단 한 번도 솔직한 리뷰를 남긴 적이 없다.
혹시 누가 볼까.
혹시 나한테 돌아올까.
혹시 평점 깎일까.
재고, 따지고, 계산하고.
그러다 보니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더 편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삶.
적당히.
무난하게.
안전하게.
“나오세요.”
그가 말했다.
“바로 집 앞은 아니고,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리뷰 안 씁니다.
편하게 나와요. 한 십 분 후?”
십분?
나는 자동으로 거울을 봤다.
오 마이 갓.
이 몰골을 인간으로 복원하려면
십 분은 기적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핸드폰을 침대에 던졌다.
화장?
살릴 수 없음.
일단 씻자.
차가운 물이 얼굴을 때린다.
그 인간이 어떤 요술을 써서 내 껍질을 벗겨냈는지,
그리고 대체 어디서 인간미를 봤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다.
왜 싫지 않지?
나는 온라인이 편했다.
디엠이 편했다.
그게 내 세상이었는데.
지금은—
안에서 밖으로 튕겨 나온 기분이다.
사랑은 오버다.
하지만
혹시
이게 사랑 비스므리한 거라면.
한 번쯤은
가능할까.
이 인간에 대해 남들이 단 리뷰 정독은 생략하겠다.
이번만큼은.
그렇게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김땡초가 잊지 않고 마지막 디엠을 하나 날려왔다.
조장은.
사귈 거냐?
근데 걔 별점 4.7이더라.
너 업그레이드 성공임.
근데 진짜 계단 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