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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May 05. 2022

새벽

바다에 깔린 검은 주단을 밀어내며 새벽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서투른 아침보다 먼저 서두를 셈인지 점점 더 빨라진다.     

푸른 바닷빛을 머금은 새벽은 저 멀리 해안에서 아직 미적대고 있는 어둠을 몰아내려 힘을 더했다.      

해안에 도달해 어둠을 지워낸 새벽빛은 은은한 고요를 밀어내는 소리를 찾아냈다.     

사악... 사악...      

푸르스름한 새벽빛은 조용히 창을 넘어 아직 어둠이 묻어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악... 사악...      

새벽빛은 나무 침상에 반쯤 걸터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어둠 속 사내는 통이 넓은 바지만 입은 채 투박한 상체를 숙여 무언가를 세심히 갈고 있었다.     

말없이 행위에 몰두하던 그는 어느새 발밑까지 들어온 푸르스름한 빛을 가져다 그것의 끝을 비춰봤다.      

사내는 느슨하게 펼쳐진 그것 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손가락으로 쓸더니, 얇은 한숨을 뱉고는 상체를 어둠 속으로 숨겼다.     

그리곤 새벽빛이 더듬고 있던 반질반질한 가죽 쪼가리를 주워 들고는 다시 작게 펼쳐진 쇠끝을 더듬거렸다.   

새벽빛은 끈질기게 사내 얼굴을 보려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끝내 얼굴에 두른 어둠을 벗지 않았다.    

'... 씨 일어나셨습니까?'      

문밖에서 사내를 찾는 듯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어둠에 잠겨있던 침상 한켠에서 흐릿한 덩어리가 엉키며 움직였다.     

덩어리는 잠시 머리를 매만지는 시늉을 하더니, 침상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섰다.     

문 앞으로 다가가 그 옆에 걸린 하얀 헝겊을 머리에 섬세하게 갈무리하고 나무 고리를 돌렸다.     

문에 걸린 나뭇조각이 내려지고 밝은 빛이 묽어진 방안의 빛을 밀어내고 집안을 밝혔다.      

아직 어둠을 두르고 있던 사내의 얼굴이, 그가 맨발을 바닥에 딛자 어둠이 서서히 벗겨졌다.      

어둠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사내 얼굴은 거친 파도에도 걸리지 않는 암초의 은밀함이 보였다.      

사내의 머리카락은 바싹 마른 솔잎처럼 억세 보이는 메마른 갈색에, 세월이 주름과 합의한 듯 이마와 미간 그리고 입가에만 깊은 골이 나 있었다.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그것을 힐끗 보고는 바짓줄에 걸었다.      

그리고 문가에서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맨발로 다가갔다.     

문가에 서 있던 여인이 말없이 그의 상의를 건네자 그 역시 말없이 받아서 들었다.     

그리곤 문 앞에서 아침 해를 등지고 선 사내에게 말했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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