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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May 05. 2022

밀실

삭막한 사각 건물 틈을 들어갔다. 창백한 회색으로 빛나는 공간을 조급하게 두리번거리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서둘렀다. 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가슴을 갑갑하게 하는 애달픔이 몸을 움직이게 했다. 다시 가라고 하면 되짚을 수 없는 건물 틈을 헤매다 우묵한 반구형 공간으로 들어섰다. 무정한 회백 공간에서 파란 물결이 가득한 몽롱한 공간에 어수룩히 들어섰다.

멋지다. 하늘을 가져다 놓은 풍경에 경계심보단 낯선 경이로움이 든다. 장난감 가게에 처음 온 어린애처럼 바닥과 천장, 벽을 구경하고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 어느새 공간 끝으로 다가섰다. 그 끝은 벽이 아니고 아득한 절벽. 하지만 이번에도 두려움보단 파란 하늘 풍경이 이어진 맑은 호수에 또다시 눈을 반짝였다. 몽롱한 푸른색은 넓은 호수 가운데를 오래된 유화처럼 묵직한 질감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을까 어느 순간 절벽 끝에 빠알간 알루미늄 난간이 생겼다. 하지만 이상함보단 저 난간을 지나 절벽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이유? 그건 모르겠다. 그리고 혼자만 있던 공간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섰고, 그들은 차례로 난간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아래로 내려갔다. 한데 내려가는 사람들 반대편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공간으로 들어선다. 


나도  당연히 내려갈 준비를 하고 난간 앞에 섰다. 몸을 수그려 틈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난간 밖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여자를 봤다.  위험하게 왜 저러고 있지? 무섭지도 않나? 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누군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가 난간 틈 사이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공간 너머가 보인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는지,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을 보여준다. 둥근  알루미늄 봉이 2개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봉을 서로 이어주는 짧고 가는 알루미늄 막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사다리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양새다. 그렇게 옆으로 길게 이어진 알루미늄 사다리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좁은 공간을 어린애처럼 엎드려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그  광경에 빨리 저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한다. 기어가던 사람들이  걸쭉한 시커먼 액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토해낸 액체는 점점 굳으면서, 틈이 넓었던 그 사다리를 사각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었다. 빨리...  빨리... 내려가자.... 아니 나갈까? 조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지만, 우묵한 반구형 공간은 어느새 좁은 사각 콘크리트 밀실이  되어있었다. 안돼. 그리고 벽은 점점 나를 향해 다가왔다.



  *지난밤 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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