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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Feb 12. 2022

잠들기 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라면 휴대폰을 들고 타인의 삶을 훔쳐봤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휴대폰을 갈망하는 양손을 억지로 이불 속에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아직 머릿속은 노을이 지는 초저녁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평소엔 혀를 마비시키는 강한 맛에 눌러있던 담백한 잡념들이 밀려들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지만, 오랜만에 들린 녀석들이 나를 잡아끈다.


밀려있던 말이 많은지 녀석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댄다. 영화 속 주인공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어릴 적 짝이 말을 건다. 그래서 그 친구를 한동안 되새기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술자리로 이끈다. 잊고 지냈던 대학 친구가 나오기도, 전 연인이 나오기도 때론 그냥 싫었던 친구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늦은 수업이 끝나고, 대학가 지하 호프집에 가서 생맥을 시원하게 들이켰던 기억이 나를 간질인다. 지금은 맥주를 먹지 않지만, 생맥주잔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이 지금도 생생하다.


생맥을 들어 맞보려는데 다른 녀석이 여긴 충분하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칭얼거린다. 어느새 맥주잔은 사라지고 누런 황토 먼지가 나를 덮친다. 여긴 왜? 기억하기도 싫은 신병훈련소다. 알싸한 생맥향에 풀어졌던 기분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주변엔 나랑 같은 모양새를 한 신병들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계단에 경직된 채 앉아있다. 아...기억하기 싫은데. 황토 먼지가 다시 나를 덮치기 전에 어서 나를 데려가.


이렇게 망상이 나를 이끄는 데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을 하는지 모호해진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런 몽롱하고 애매한 상태는 잠들기에 좋으니까. 그래 기분 좋은 잠을 잘 수 있겠어.


'쿵'


정신이 수면 아래로 천천히 침잠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가라앉는 나를 강하게 당겨올렸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 얌전히 잠들려던 소심한 심장은 침대 전체를 울려대며 쿵쿵댄다. 몽롱하던 정신은 갑자기 발작하듯 두근대는 심장 때문에 맛만 본 달콤한 잠을 아쉬워한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정신없이 나대는 심장을 안정시키고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편안하게 나를 감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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