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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an 30. 2022

돌거북

내 고향 겸 친가와 외가는 모두 한 곳에 모여있다. 부모님이 시골에서 나고 자라, 고향동네에서 만나 결혼하셨다. 그리고 막내인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셨다. 이유는 시골에서 4남매를 키우기 힘들어 도시로 이사를 결심하신 것이다. 부모님의 고향이자 내고향인 그곳은 아주 깊은 곳이다. 읍내에 서, 하루에 몇 번없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덜컹거리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버스가 고향집 앞에 서는 것도 아니다. 버스가 외진 산골 깊은 곳에 나를 내려주면, 나는 엄마손이나 아빠 손을 붙잡고 산길을 한참 올라야 했다. 지금은 길이 다져저 자동차도 다니지만, 그때는 어른도 30분이 걸리는 험한 길을, 그때는 징징대며 다녔어야 했다.


고향 마을엔 친가와 외가사이에 커다란 마을 공동샘물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니 물이 거의 말라버렸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항상 맑은 찰랑거리며 샘터의 둔턱을 넘실거렸다. 나는 그 샘터를 좋아했다.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시골에 내려가면 나는 항상 이 샘물 근처를 얼쩡거렸다. 마치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샘터는 어린 나에게 상당히 거대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봐도 그 샘터는 다른 곳에 비해 컸다. 샘터는 길쭉한 상자의 한면을 자른 형태였다. 겉면은 시멘트로 마무리를 했고, 샘터의 윗부분 즉 머리부분에 누군가 거북이 한마리를 투박하게 만들어 놓았다. 특히 당당하게 하늘로 솟은 길죽한 목과 험상궂은 얼굴이 압권이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시멘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지, 그때는 누가 바위를 파내어 거북이를 조각한 줄로만 알았다.


나는 마을 공터에서 놀다가 목이 마르거나 하면 이곳으로 달려와 샘터에 머리를 박고 물을 마셨다. 공터 근처 아무집이나 들어가 물을 마셔도 됐지만 꼭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가 머리를 박고 물을 마셔도 샘이 깊지 않아 위험하지 않았다. 깊이는 내 허리 어름정도 였다. 햇볕이 쨍하고 내리쬐는 여름 한낮이면 나는 얇은 수건하나를 들고 샘터위에서 낮잠을 즐겼었다. 어린 내가 위에서 굴러다녀도 공간은 충분해서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샘옆에 커다란 나무(느티나무)가 있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고, 무엇보다 지하수의 서늘한 기운이 샘터 위로 올라와서 아주 시원하고 좋았다. 지금은 거기 샘터 위에서 자라고 하면 입돌아 간다고 하면 손사래를 쳤겠지만 그당시엔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거기를 종종 내 낮잠터로 애용했었다.


이번 명절에 고향을 갈 지 모르겠지만, 그곳 샘터를 들를 마음은 없다. 몇 년 전에 고향을 방문해 샘터 근처를 지나다, 거북이가 생각나 샘터로 향했었다. 하지만 어릴 적 대단하고 멋지다고 여겼던 거북이는 시멘트로 아주 조악하게 만들어진 어설픈 놈이었다. 차라리 안봤으면 좋았을 텐데. 어렸을 땐 그렇게 커다랗고 멋진 장소였지만 다시 찾은 샘터는 생기가 사라진 채 초라하게 늙어버렸다. 그때 나는 괜스레 못나보이는 거북이 콧구멍을 찌르고 한숨을 쉬었었다. 어렸을 땐 친구하고 거북이 등에 얽기설기 그어진 선에서 오목을 두다가, 친구를 이기면 거북이 등에 올라 녀석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환호를 질렀었다. 그 환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콧구멍은 다 허물어지고 희미한 자국만 남아 있었다.


© shesmorphin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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