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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an 27. 2022

촌놈

휘유....  높다. 높아... 볼일 때문에 높은 빌딩 앞, 아니 앞으로 가기도 전, 저만치에 보이는 건물인데도 고개를 힘들게 한다. 저런 곳은 왠지 민망한데. 마인드부터 촌놈인 나는 화려하게 치장된 백화점이나, 비싸 보이는 것들로 가득한 곳을 가면 주눅이 든다. 뭐  그렇다고 해서 얼굴이 빨개진다거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버벅대진 않는다. 물론 그런 못난이 시절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이젠  애송이 시절은 지났으니 얼굴은 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속으론 얼른 삐까뻔쩍한 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런 촌놈  마인드는 고쳐지지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습다. 지금도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 중이다. 이 표정은 너무 화난 것 같으니 입꼬릴 좀 더 올릴까?  아니다. 너무 올렸어. 이 정도... 그래 이게 딱 좋아. 느낌을 기억해야지.... 이렇게 표정을 연습을 하는 나를 누군가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하지만 나에겐 나름 삶 아니 관계를 유지하거나 만들기 위한 소중한 수단이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좋다. 필요 이상으로 나를 보여줄 필요도, 상대를 알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보여주는  정도, 그리고 상대가 보여주는 정도만 보면 된다. 발가벗을 필요도, 벗길 필요도 없다. 서로가 너무 가까워지면.... 하아....  솔직히 피곤하다.


간혹 가면을 쓰고 사람을 상대하다가, 표정 유지가 힘들 때가 있다. 바로 '나'를 발견할 때. 언젠가 상대는 애써 덤덤한 표정을 하고 능숙한 척 손을 내밀 때, 하마터면 가면이 벗겨질 뻔했었다. 대략 10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딱딱하게 경직된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릴 때, 미소를 짓는데 입술이 파르르 떨릴 때 그리고 눈을 보고 얘기하는 데 갑자기 그의 눈이 심하게 흔들릴 때  등등... 아직 연습이 안된 그런 풋내기를 볼 때면,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꽉 깨문다. 잘못하면 웃음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하면 풋내기 상대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하하... 제발 좀.... 그러나 그런 풋내기의 신선한  매력은 거기가 끝이 아니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악수를 하면....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이 땀에 젖어  축축하다. 그는 얼굴이 상기된 채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감에, 손의 상태도 모르고 악수를 한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이불을 걷어찼는지....


돌아다니다  보면 나 같은 촌놈들을 이렇게 간혹 보곤 한다. 상대에게 다가가 친한 척을 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매우 어색할 게 뻔하니 모른 척  지나친다. 그리고 비슷한 부류를 보고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촌놈이 아무리 연기를 송강호급으로 해도, 촌놈은 촌놈이다. 


© mrcalver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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