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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an 24. 2022

그저그런

지금  무언가를 씹고 있는 데 맛이 없다. 푸석푸석하고 질긴 게 꼭 골판지를 씹는 느낌이다. 내가 뭘 씹고 있었지? 무언가 입에 넣은 적이 없는데. '퉤'하고 바닥에 뱉어보니 오늘 내 하루였다. 오늘을 되새기며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나 보다. 기분 나쁜 일도 엿 같은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날아갈 듯 해피한 일도 없었다. 항상 그렇듯 밥 먹고 커피를 홀짝인 그저 그런 하루였다. 되새길만한 일은 없었다.


바람은 차고 하늘은 옅은 회색빛이다. 뭐 씹다 버린 껌 같은 구름 사이로 파란색이 얼핏 보이긴 한다. 하지만 애매한 파란색이다. 누군가에겐 청량한 색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애매하다. 메마른 겨울바람이 내 피부의 습기를 다 핥아먹었는지 입술이 불길한 소릴 내며 갈라졌다. 제길... 혀로 깔짝거려 보니 비릿한 피 맛 보단 아릿한 아픔이 느껴진다. 립밤을 다 써버린 지 3일 정도 지난 거 같은데... 겨우 3일 지났다고 입술의 각질이 일어났다. 혹시 다 써버린 립밤이 남았나 하고 소매를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속주머니에서 잘 지내던 헝겊 찌꺼기만 내 손톱에 걸려 나왔다. 몸을 벤치에 기대고 뻣뻣한 고개를 들어 괜스레 하늘을 봤다.  별 의미 없는 행동에 입술만 더 찢어졌다. 


혀로 찢어진 곳을 건드리며 별거 없던 하루를 생각했다. 무채색인 하늘과 오늘 아니 어제와 그리고 내일로 이어질 내 하루와 닮았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지루할 뿐. 하지만 지루하다 해서 용기 있게 화려한 원색 물감을 덧칠할 자신도 없다. 괜히 겨우 균형을 맞춘 내 삶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면 안 되니까. 만약 한쪽으로 약간이라도 치우치면 원상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겐 상당히 중요하다. 패턴의 불균형이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진 않지만, 뭔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마치 겨울에 손을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손거스러미가 주는 불편함이랄까. 아무튼 불편하고 마음이 쓰인다. 해서 거스러미를 없애기 위해 연고를 바르거나 립밤을 바르듯이 한쪽으로 치우친 저울의 눈금을 가운데로 돌려놔야 한다. 특별히 대단한 비결은 아니다. 불편함을 무시하거나 녀석을 치우버리면 된다. 삶의 커다란 불균형이라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사소한 불균형은 해결 방법마저 사소하다. 하지만 이런 사소함을 해소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상당히 귀찮고 하찮다는 것을.


옆에  놓여 있는 미적지근한 커피에 허연 막이 보인다. 나는 이게 좋다. 다른 이들은 이해를 못 한다. 하긴 나도 왜 이 보일 듯 말 듯 한 프림의 흔적을 왜 좋아하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하나? 커피가 뜨거울 땐 '후후' 불며 얼른 마시려 안달한다. 이때 이 흐릿한 막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하얀 김과 조급한 마음이 이 녀석을 발견하기 힘들게 한다. 눈에 보여도 그냥 무시를 한다. 지금이 딱 좋다. 마시기에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이때가 좋다. 조급함이 없어져 마음이 느긋해져 뭔가 다른 점이 보인다. 뭐...그렇다는 거다. 특별한 의미 따윈 없다. 그냥 그런 거다. 내 하루처럼.



© catrionaobria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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