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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Aug 16. 2022

왼편 끝 모서리

따가운 햇살이 시멘트 바닥을 바삭하게 굽는 정오.


목청을 높이던 매미조차 지쳐 버린 한낮에 마무리가 어설픈 투박하고 꺼끌한 시멘트 스탠드에 어린 학생 한 학년 전체가 강제로 징집되었다. 새하얀 섬광의 파편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아이들의 정수로 매섭게 날아들어 아이들을 괴롭게 했다.


스탠드의 아이들은 정수리와 피부를 파고드는 따가운 햇볕에 흥건한 땀을 흘리며 축축한 손으로 붉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헐렁한 스케치북으로 가리거나 스탠드 꼭대기에 살짝 삐져나온 작은 관목 아래 옅은 그늘에 몸을 바싹 붙였다. 하지만 햇볕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자기 다리만큼 높은 계단을 대중없이 겅중거리며 스탠드를 바쁘게 오르락거렸다.


몇몇 대가리 굵은 남자아이들은 스탠드 너머 풀밭에서 잡아온 여치나 방아깨비로 자기네들끼리 조잘거리던 계집아이들을 희롱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사방으로 튀는 풀치에 여자애들은 자지러지고, 여전히 낄낄대며 여자아이의 긴 머리칼을 여치로 주접거렸다. 장작불 열기보다 게으른 햇볕에 나른하고 따분한 분위기로 가득했던 기다란 스탠드에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린 듯 소란스러워졌다.


스탠드 맨 위, 그리고 왼편 끝 모서리.


살아온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크고 긴 느티나무가 그동안 살아온 이유를 보여주며 짙고 서늘한 어둠을 왼편 끝 모서리에 조금 걸쳐놓았다. 햇볕을 향한 욕망을 가식으로 놓치는 것조차 안타까운지 빽빽한 가지와 풍성한 잎사귀를 한껏 늘어뜨려 밑으로 햇볕 한 톨도 흘리지 않았다. 사막한 어둠과 서늘한 냉기, 으슬한 바람의 은신처에서 짜증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해! OOO 것들이 더워 죽겠는데, 왜 지랄들이야!' 


욕심 많은 구두쇠 느티나무보다 더 원색적으로 욕망이 묻어 나오는 꿀렁이는 낯과 몸뚱이를 지닌 중년 남성이 왁자지껄한 스탠드 아래를 노려 보았다. 그는 원색적으로 짜증을 내뿜으며 순간 고요해진 스탠드를 향해 위악을 부렸다.


'그림 제대로 안 그린 새끼는 다들 뒤질 줄 알아. 알았어?' 


악을 친 중년 사내는 자신의 목청과 위압이 마음에 들었는지 뱀꼬리처럼 빳빳이 섰던 대가리를 다시 의자에 기대며 콧김을 짧게 뱉고 다시 그늘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왼편 끝 모서리를 힐끗 거리며, 자기들끼리 조용히 소곤거렸다. 겅중거리다 사그라들었던 남자아이들은 다시 살아나려다 중년 사내의 두툼한 손을 기억해 내고 다시 사그라들었다.


쨍한 따가운 햇볕에 몸단장을 깨끗하고 매끈한 소방차만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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