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전히 설례는 계절

by 나린



물기를 머금은 겨울 공기는 언제나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조금 더 투명하게 비춰낸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하나둘 거리에 걸리기 시작하면, 내 마음에도 어느새 종소리가 울린다. 이 계절이 오면 늘 그렇다. 설레고, 따뜻하고, 어쩐지 마음 한켠이 조용히 반짝인다.


어린 시절 대구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하얗고, 훨씬 더 추웠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골목길, 그 길 한쪽 난전에서 나는 엄마를 도와 장사를 했다.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엄마의 손에 전해지던 군고구마의 온기는 세상 어떤 난로보다 따뜻했다. 연탄불 냄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 국물, 발을 동동 구르며 서로의 숨을 나누던 사람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눈 내리는 날 장사를 도와야 할 일도, 손을 녹이기 위해 김을 불어가며 어묵을 먹을 일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겨울은 여전히 나를 들뜨게 만든다. 도시의 거리는 네온과 트리 장식으로 반짝이고, 카페 안에는 따뜻한 시나몬 향이 감돈다. 창밖에 살짝 내려앉은 눈송이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소리 없이 ‘딸랑’ 울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겨울은 그저 추운 계절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겨울은 언제나 이야기의 시작이다. 기억 속의 엄마, 얼어붙은 손, 그리고 눈 내리던 밤의 시장 풍경이 한데 엮여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싼다. 설렘이란 어쩌면 이런 오래된 기억의 따뜻한 숨결 속에서 피어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시작이 알리는 그 첫 종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