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지워진

제1화

by 백상민

“10점! 신하나 선수 대단합니다. 마지막에 쐐기를 박네요. 이로써 신하나 선수가 8점이라는 큰 점수 차로 안리은 선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역시 신하나 선수입니다.”

“그럼 저희는 현성자동차배 한국양궁대회 중계방송 마무리하겠습니다. 함께해주신 위원님,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기를 성황리에 마친 하나의 입가엔 웃음기가 머물러있었다.


“수고했어, 리은아.”


나는 하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나가 받을 1억 원이라는 엄청난 우승상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우승도 5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받는다고 했다. 프로선수라면 어떤 대회라도 누구나 1위를 원한다. 나는 그냥 1위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 우리 같이 밥 먹은 지 오래 된 거 같은데?”


하나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살갑게 말을 건넸다. 나는 솔직히 하나가 말을 거는 게 거슬렸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대답하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경기장에서 빠져나왔다. 집에 빨리 가서 아무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나는 집 앞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는 버스카드를 찍는 나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날 알아본 건가? 버스기사의 형식적인 인사였을 텐데, 괜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는 승객과의 다툼으로 민원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사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구석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 기사가 라디오를 즐겨듣는지, 버스는 라디오 소리로 가득 찼다. 요즘 라디오를 트는 버스가 어디 있어.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그때, 내 뒤에 앉은 한 학생이 굉장히 큰 목소리로 라디오 볼륨을 높여달라고 말했다. 버스 안에 손님이 많이 없어, 학생의 말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기사는 볼륨을 높였다. 이어폰을 꽂은 내 귀에도 라디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서울 올림픽 평화의 광장에서 현성자동차배 한국양궁대회가 있었습니다. 대회 우승은 신하나 선수, 준우승은 안리은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다음은 야구입니다. 서울 위너스 김정훈 선수가 오늘도 홈런을 기록해 홈런부분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위너스는 김정훈 선수를 중심으로 타선이 폭발해, 전주 피닉스를 9대1로 이기고 현재 선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정훈 쟤 옛날에 약물해서 벌크업한 애야”


옆에 앉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한테 말을 했다. TMI였다. 여자친구는 야구 얘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자기 남자친구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여자친구가 물었다.


“왜 약물을 했는데?”

“뭐 잘 안 풀리니까 그런 거지. 자기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밀리니까.”


대중의 평가를 받는 것은 연예인만의 숙명이 아니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남의 얘기를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남이야 약물을 하든 말든. 그래도 저 선수는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얼마나 잘 안 풀렸으면 범법행위를 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던 순간, 오늘 경기가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방금 있었던 일을 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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