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 펼쳐지고 있는 여기는 안산 양궁 경기장입니다.”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소리와 함께 캐스터가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1위부터 4위까지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나는 8강전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왔다. 나와 맞붙은 상대들은 대부분 신인 급이거나 실력이 많이 노쇠한 선배들이었다. 그렇게 8강전에 올라갔는데, 상대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하나’
하나와 8강전에 맞붙게 되었다. 하나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매우 수월하게 8강에 올랐다. 4강에만 올라도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때문에 이 경기만 이기면 되는데, 하필 그 문턱에서 하나를 만난 것이었다. 한 게임만 늦게 만났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기다린 대회인데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 경기에서 하나를 이기면, 하나는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없었다. 하나를 이기면 하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에게 다가와 미소로 인사하고, 곧바로 경기에 집중했다.
“지금은 신하나 선수와 안리은 선수의 8강전이고요, 도움 말씀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예나 해설위원 모셨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8강전부터는 정말 경기 결과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이기기만 하면, 순위에 상관없이 국가대표에 선발되죠. 과연 두 선수 중, 국가대표의 주인공이 누가 될까요?”
“신하나 선수는 지난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기록이 있죠. 그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바 있고요. 안리은 선수는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부상으로 인해 참전하지 못했는데요. 과연 이번 기회를 잡을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해설 팀은 흥분된 목소리로 경기의 시작을 전달했다. 하나와 나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똑같은 점수를 연신 기록했다. 하나가 9점을 쏘면 나도 9점을 쐈고, 하나가 10점을 기록하면 나는 엑스텐을 기록해버렸다. 그렇게 세발을 남기고도 우리 둘은 동점이었다.
“이제 두 선수 다 세 발씩 남겨두고 있습니다. 먼저 신하나 선수”
슉, 휙, 탁
“10점입니다! 역시 신하나 선수 대단하네요. 이로써 국가대표에 성큼 다가갑니다.”
“역시 대단하네요.”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엄청났다. 이제 나의 차례였다. 나의 화살은 모두가 보란 듯이 과녁 한가운데에 꽂혔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오 10점이네요!”
“안리은 선수, 준비를 정말 많이 한 듯합니다. 두 선수 경이롭습니다.”
“다시 신하나 선수의 차례.”
슉, 휙, 탁
“어? 이게 뭔가요. 8점입니다.”
“신하나 선수, 긴장한건가요?”
“이제 안리은 선수.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슉, 휙, 탁
“오! 10점입니다! 안리은 선수가 역전을 하네요! 안리은 선수, 대단합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의 마지막 차례가 왔다. 해설진들은 지금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그 말을 들었는지 완벽한 포물선과 함께 10점을 기록했다. 이제 금메달의 주인공은 내 손끝에서 정해지게 되었다.
“안리은 선수가 9점 이상을 쏘게 되면 금메달을 확보하게 되죠? 지금 안리은 선수의 페이스로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8점을 쏘게 되면 동점입니다.”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제 안리은 선수의 마지막 발!”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나는 숨을 참고 천천히 활을 당겼다. 활의 줄은 매우 팽팽해졌다.
슉.
“마! 그게 아이지. 하나를 좀 봐봐라. 얼마나 잘하노? 닌 하나랑 경기 할 때마다 매번 지냐. 니 연습 안했제?”
“죄송합니다. 연습을 많이는 했는데, 아직 제가 부족한 거 같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연습은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코치님, 알아주세요."
“맨날 말로만 연습했대지, 그럼 하나를 한번이라도 이기던가. 어차피 프로가 되면, 사람들은 지는 사람에게 관심 없다. 맨날 지는 주제에 위로받을 생각 하지 마라. 억울하면 이기면 될 거 아이가.”
“코치님! 저 왔어요!”
“어~ 하나야. 일찍 왔네! 요즘 괘안나? 잘 안 되는 건 없고? 내가 도와줄 거 없나?”
멈칫.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홍익고등학교 양궁부 시절이 떠올랐다. 나를 쳐다보며 욕을 하던 코치의 목소리와, 하나만을 편애하는 코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익.
탁.
“아.. 7점이네요.”
“아, 저러면 안돼요. 안리은 선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발에서 실수가 나오네요.”
“이래서 양궁도 끝날 때 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이 나왔다. 결국 또 모두의 스포트라이트는 하나에게 향했다.
“이로써 신하나 선수가 4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신하나 선수,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그리고 신하나 선수는 이후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2016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이 확정되었습니다.”
“안리은 선수는 아쉽지만, 이번 올림픽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싸워준 안리은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신하나! 신하나! 신하나! 신하나!”
관중들은 하나의 이름을 목 터지게 외쳤다. 그때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리은아 수고했어. 좋은 경기였어. 네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아. 고맙고 미안해.”
눈치가 없는 건지, 마음씨가 착한 건지, 하나는 나를 신경써주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하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국가대표의 문턱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꿈틀거리던 하나에 대한 자격지심이 밖으로 나오려 했다. 하나를 뒤로한 채 나는 경기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