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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y 24. 2023

나처럼 생긴 아시안 친구를 만났다.

홍콩친구 제니와 데니

"오늘은 금붕어를 살 수 없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사자고 조르고 또 졸랐지만 나에게는 한 아이를 입양하자는 말로 들렸다. 며칠간의 타협 끝에 아이들이 개를 포기했다. 대신 두 달 전에 샀던 금붕어 올리브가 외로울 거 같으니 금붕어 두 마리를 더 사자고 했다. 귀가 쏠리는 제안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어항을 깨끗이 닦고 어항 안에 들어갈 조개와 돌들을 보드득 보드득 씻어 예쁘게 장식했다. 그리고 새 물을 받았다. 드디어 우리는 올리브의 룸메이트를 환영할 준비를 마쳤다. 과연 누구를 데려 올까. 올리브가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동네 수족관 매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핑크빛이 도는 소란사이즈 물고기 하나와 오렌지 빛에 검은 점이 잉크처럼 뿌려진 왕란사이즈 금붕어 하나를 가리켰다. 

"두 마리 살게요"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던 점원은 집에 있는 어항 물을 언제 갈았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갈았고 그들의 보금자리도 완벽하게 준비됐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럼, 오늘은 금붕어를 살 수 없어요. 3-4일 후에 다시 오세요"

껌딱지처럼 금붕어 탱크에 달라붙었던 아이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지금 물고기를 데려가면 새 물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게 점원의 대답이었다. 금방 죽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덧붙였다. 이런 협박에 가까운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새 물보다는 오히려 올리브가 이미 똥 좀 싸 놓고 물을 삼켰다 내뱉은 누런빛 어항 물이 더 적응하기 쉽다는 말이었다.


"고향에 다시는 안 갈 거예요"



스코틀랜드 촌구석 마을에서 나처럼 생긴 아시안 친구를 처음으로 만난 건 교회였다. 짧은 단발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그녀는 십 대로 보이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혹시나 한국사람은 아닐까 조심히 물어봤는데 홍콩에서 왔단다. 가까운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녀는 자신을 제인이라고 소개했고 열네 살 된 아들을 데니라고 불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그 후로 짜장면이나 김치볶음밥, 버블티, 홍콩식 붕어빵을 먹으며 종종 서로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지 않고도 신발을 벗어 집안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손 웨이브 인사보다는 고개 인사가 익숙한 그들. 나무젓가락으로 바닥에 달라붙은 사각 양파까지 싹싹 긁어먹거나 웃을 때 입을 가리는 것까지. 아시아라는 한 대륙에 살았던 우리에게는 대륙만큼이나 닮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 또한 피할 수가 없었다.


"고향에 다시는 안 갈 거예요!"


제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2019년, 4월. 홍콩 정부가 범죄 용의자들을 중국 본토로 인도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도입하면서부터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영국의 홍콩 반환 이후 벌어진 최악의 폭력 사태는 제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제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루탄 가스를 마셨던 날, 하얀 연기로 눈물 콧물을 터트리고 있을 때 고무 총알이 공중에서 비처럼 쏟아졌다고 했다. 거리가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단다. 제인은 평소처럼 먹을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데니도 피아노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길거리에서 두 명의 경찰이 데니의 가방을 뒤졌고 심오한 심문이 이어졌다. 그에게 꼬투리 하나 털 게 없었던지 그냥 보내주었다. 외줄 타는 마음이었지만 평온한 척하며 그 골목을 지나가려는데 데니의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였다. 자기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한 아이가 누워 있었다. 경찰은 나무 치우듯 시체를 도로 옆으로 걷어찼다. '오늘은 살았구나.' 집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제인과 데니는 지옥으로 변해버린 홍콩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고작 여행 가방 네 개 달랑 들고서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딱 사일 후에 동네 수족관을 다시 찾았다. 핑크 빛 금붕어를 '핑키'라고 불렀고 검은 잉크 빛이 뿌려진 금붕어를 '빌리'라고 불렀다. 수족관 점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물고기가 새 집을 갔을 때 바로 받은 수돗물에 적응을 못하고 죽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예 물고기를 팔 때면 탱크물이 며칠 되었는지 물어보게 돼요." 

물고기에게도 삼일 또는 나흘이나 되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안타깝게도 제인과 데니에게는 물고기한테도 필요했던 사나흘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던 낯선 땅으로 무작정 비행기 편도행을 끊고 영국 히드로 공항에 떨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여기 공기가 편안했을까. 새로운 집은 괜찮았을까.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해 줬을까. 적응하고 뭐고를 따질 겨를도 없었겠지. 변호사였던 제인은 닥치는 대로 돈 되는 일을 시작했고 데니는 서둘러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저는 학교에 다닐 수 있으니 행운아예요."

데니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눈을 뜨면 밥을 먹고 도시락을 싸고 가방을 챙겨서 학교를 가는 게 딸의 일상이건만 누군가에게는 푸른 잔디 위의 네 잎 클로버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보기 힘든, 아주 특별한 행운이었다.

독재타도를 외쳤던 사람들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부산이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면 양쪽 도로 중앙으로 우뚝 솟은 육교를 건너야 했다. 계단 위를 총총 올라가다 보면 차는 하나도 없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육교 밑을 지나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독재타도'라고 적힌 푯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다 떼창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어느 날,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작은 상점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쌍쌍바를 골라 두 동강이를 내고선 신나게 가게 문을 나서는데 아빠의 가슴과 머리 위로 아이스크림 박스가 올라가 있었다. 아빠 뒤를 쫓으며 육교를 향해 걸었다. 아빠는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시위하던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다음에 이 땅에 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세계 곳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용감하게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그게 삼일이 걸릴지 3년이나 30년이 걸릴지. 자유를 위한 투쟁은 사람이 살고 있는 한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핑키와 빌리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싶다. 밥 주려고 다가가기만 해도 벌써부터 입을 물 밖으로 벌린 채 쩝쩝 거린다. 밥도 잘 먹고 똥도 기똥차게 길게도 싼다. 둘이서 줄다리기는 거뜬히 할 수 있을 만큼 길다. 노랑빛 어항은 점점 짙은 모래색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물을 갈아 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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