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는 풀이 있다. 내가 정말 쏘이기 전까진 나도 믿기지 않았다. 몇 년 전, 런던에 살고 있을 때 밀톤 케인스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빼곡한 집들과 주차된 차들로 도로가 비좁은 런던과 달리 밀톤 케인스는 우거진 수풀이 여러 집들을 끌어안고 있는 듯 편안하고 아늑했다. 친구와 같이 오솔길을 걷다가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던진 공이 굵은 가지가 쭉쭉 뻗은 참나무 쪽으로 떨어졌다. 무릎 위로 올라온 풀들을 헤쳐가며 공을 주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칠부바지와 양말 사이의 20cm. 살이 드러난 그 발목이 뜨끔거렸다. 긁혀서 피가 난 것도 아니고 다쳐서 발목이 부러진 것도 아니었다. 보이는 상처는 하나도 없는데 발목 주위가 벌에 쏘인 것처럼 쓰라리게 아팠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쏘는 풀이 있다는 걸. 그러고 보니 이파리 자체가 톱니처럼 쫙 펼쳐진 게 성깔 있어 보였다. 줄기 위로 실처럼 난 털들도 왜 나를 건들었냐는 듯 뾰료통하게 주뼛주뼛 서 있었다. 그렇게 쐐기풀(Stinging nettle)이라는 걸 처음 만났다. 비누로 씻어보고 냉찜질도 해봤지만 다음날이 돼서야 통증이 가라앉았다. 내가 그 무시무시한 풀을 다시 기억했을 때는 며칠 전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손바닥이 욱신욱신 아려올 쯤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다 그 풀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기다려 봐. 쐐기 풀 주위를 돌아보면 진정시켜 주는 풀이 있기 마련이야."
같이 산책하던 친구가 두 발짝 움직였을까. 물결처럼 길게 늘어진 푸른 풀의 이파리 하나를 똑 뜯어 건네주었다.
"손바닥에 문질러 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초록 이파리를 손바닥 사이에 두고 슈렉의 손바닥이 되도록 비비고 또 비볐다. 쑤시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친구는 그 풀을 도크 잎새(Dock leaf)라고 불렀다. 고작 두 발짝만 움직였을 뿐인데 하마터면 힐링을 놓칠 뻔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미술시간이 좋았다. 유일하게 혜영이라는 이름이 벽 어딘가에 내 작품과 함께 걸리거나 또래 아이들에게 내 이름이 불려지며 칭찬받는 과목이었다. 고3 이 학년 때로 기억한다. 구릿빛 세련된 양복을 걸치고 가지런한 앞머리에 새까만 머리, 댕강 뭐라도 부러트릴 것만 같은 눈빛을 가진 미술 선생님이 처음 오신 날.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내가 왜 너희를 가르쳐야 해? 칠판 쳐다봐! 이 OOO들아!"
필터에 걸리지도 않은 채 더럽고 거친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우두둑 떨어진 말들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동공의 흔들림도 없이 꼼짝없이 칠판만 쳐다봤다. 교실 안으로 무거운 침묵이 짙은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혹시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선생님께 닿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저 새끼 또라이 아냐?" "쟤가 교장 아들이래." "유학했다더니 마약을 쳐 먹었나."
아이들 사이에선 별의별 말들과 오만 욕들이 떠돌았지만 막상 미술 시간이 다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반항하지 못했다.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허리를 곳곳이 펴서 칠판만 쳐다봤다. 다음 미술 시간에도 그렇게 1년 동안 이어졌다. 쐐기풀에 쏘인 것처럼 맞아서 멍든 것도 아니고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자꾸 따끔거리고 아팠다. 그때는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간지 1년째 되던 해였다. 아빠 사업차 어쩌다 나만 부산의 아빠 친구집에 남겨졌다. 인문 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고 내 꿈과 의지와 상관없이 부스러기처럼 유일하게 떨어진 곳. 야간 상업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사람들은 보통 우리 학교를 가리켜 공부 못 하는 애들이 다니는 학교라고도 했다. 어쩜 미술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쉬 불어오는 바람에도 휘 날아가는 쓰레기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일어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민무늬의 검은 원피스에 팔랑거리는 갈색 단발머리. 막 대학을 졸업한 언니 같은 선생님. 무슨 일이었는지 교복을 입고 선생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날은 학원을 땡땡이치고 오전부터 늘어지게 선생님 집에서 놀았다. 선생님의 엄마를 만났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고 테이블을 끼고 앉아서 선생님과 먹었던 딸기는 무척이나 달았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아이들이 시끄럽게 집으로 갈 때쯤 선생님과 함께 등교를 했다. 보조개가 깊이 들어가도록 활짝 웃었던 웃음과 살며시 어깨를 다독거리던 손길은 마치 두 발짝거리에 있었던 도크 잎새와 같았다. 마치 선생님의 초록 마음이 내 마음에 닿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따가웠던 마음이 차차 괜찮아졌다.
위로는 반드시 말이 아니라, 어떤 풍경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에세이-
돌이켜보면 일어 선생님과 특별히 주고받았던 말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일어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나에게 잔잔한 웃음을 가져다준다. 도크 잎새처럼 어쩌면 위로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가지 않고도 한참을 두리번거리거나 힘들게 들추어 보지 않아도 겨우 두 발짝만 움직일 만큼의 익숙한 자리에서 우리는 도크 잎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보슬보슬 비가 오고 나면 환하고 힘차게 뻗어가는 무지개처럼 특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다가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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