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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Oct 20. 2023

새 관리라면서 닭을 죽이라고?

아껴야 했다.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걷고 가끔 친구들과 갔던 커피숍도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워낙에 외식을 하지 않지만 식성 좋은 세 아이들을 키우며 일반 식비마저 줄인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영국은 지금, 물가, 난방비, 기름값에 죄다, 수상스키에 모터라도 단 것처럼 누가 누가 이기나 미치도록 질주하고 있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몇 달째 튜브 끼고 제자리 수영만 연거푸 하는 중이다. 푸-하. 숨이 버겁다. 


'어떻게 하면 허리띠를 잘 졸라맬 수 있을까'만 곰곰이 고민했었다. 그러다 큰 딸이 학교에서 가져온 편지를 읽고 나서부터는 '일을 찾아야겠다'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2023년 중학교 3학년 역사 탐방 여행'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다니며 제2차 세계대전시 영국 군인이 전쟁에 참여했던 곳을 방문하며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거라는 장문의 편지였다. 그러나 내가 뒤로 자빠질뻔했던 문구는 마지막 줄이었다.  


여행비: £650(백십만 원)


옴마야. 5g의 편지 한 장이 50kg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나는 편지의 무게에 완전히 케이오됐다. 딸한테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혀가 엉켜서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못 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릴지 모르니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도 건넸다. 그날부터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기름값 안 들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면 좋겠고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추려면 오후 3시 이전에는 마쳐야 하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괜찮겠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결혼 전 싱글 때 간호사로 근무했던 3년, 뉴질랜드 선교단체에서 일했던 3년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결혼해서 애 키우고 홈스쿨링이 전부였으니. 그렇다고 전화를 받거나 글을 써야 하는 사무일은 영어로 실수할까 봐 안 되겠고 숫자와 관련된 회계일은 우주에서 살아남을 우주복을 만드는 과학처럼 복잡한 것이라 멀리해야 한다. 어째 집어넣을 이력은 없는데 뺄 조건만 수두룩한 게, 시작부터 깊은 한숨만 절로 나온다. 


제일 먼저 집에서 가까운 '농장'에 이력서를 보냈다. 구인란에 <농장 관리자>라는 제목으로 새를 관리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같이 새에게 먹이를 먹이고 몸무게를 재며 아프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란다. 문득 나를 위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오렌지빛 턱시도를 입은 로빈이 우리 마당을 방문할 때나 파란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단풍나무를 올라타는 블루티트를 볼 때마다 그들의 총총거림과 살랑거림에 숨이 멈춰지곤 한다. 그런데 농장 관리자라면 새들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과연 어떤 새를 만날까. 이력서를 쓰면서도 내일부터 당장 일을 나갈 사람처럼 콩닥콩닥 심장이 자꾸 나대서 진정되질 않았다.


이력서를 보냈다. 적임자를 만나면 개별 통지를 해 주겠다던 농장에서는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내 이력서에 뭐가 부족했을까. 어떤 말을 더 넣었어야 나를 뽑아 줬을까. 아니 면접이라도 일단 보게 해 주지. 생각하면 할수록 농장주가 미웠다. 치. 나처럼 새에 진심인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다 내가 이력서를 낸 농장에서 1년 정도 일하다 그만둔 한 청년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무지하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새를 관리했어요?"

"닭이요"

닭 사육장이라고? 먹이 주고 몸무게 재고 매일같이 얼마큼 자랐나 확인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토실토실한 닭이 기대치의 몸무게가 되고 나면 도끼로 목을 잘라야 한단다. 그것까지 농장 관리자의 몫이라고 했다. 헐. 차라리 처음부터 구인란에 닭이라고 써야 되지 않았나? 미워했던 농장주를 안녕히 보내주기로 했다. 과연 딸의 여행은 가능한 것일까. 그러다 나를 붙잡아 준 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따님의 여행길에 얼마라도 보태고 싶어요."


딸의 여행비를 대기 위해 일자리 구하는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고 난 다음 날, 모 브런치 작가님한테서 온 메일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또 다른 작가님으로부터 아이의 여정을 돕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어떤 날은 이웃집에 사는 한 할머니가 아이들을 위해 쓰라며 꼬마 김밥처럼 돌돌 말은 돈뭉치를 내 주머니에 찔러 주기도 하고 발신자 없는 하얀 돈봉투가 우편함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놀라웠다. 기적처럼 딸의 역사 탐방 여행비는 100% 채워졌다. 


모두가 연결되었다.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느슨하고 끊어질 것 같이 약한 끈이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는 줄. 그 줄을 누군가가 잡아당기면서 "저 여기에 있어요"라고 한다. 그 사람을 발견한 우리는 당신이 그곳에 있었군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요. 당신이 잘 되면 좋겠어요. 이런 새로운 연결의 방식이 우리의 사회를 선한 방식으로 연결해 주는 것 같다. 

김민섭 작가 [사색의 공동체 스미다]의 강의에서 


스코틀랜드의 틸리, 이 조그만 마을에 사는 열네 살 소녀가 역사 탐방 여행을 간다는데 그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느다랗고 느슨하게 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더할 건 없는데 뺄 건 많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면서 깨달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할 이력은 없는데 뺄 조건은 수두룩 하다는 걸. 더할 월급이 없으니 간신간신 지출비를 빼야 했고 19도였던 우리 집 실내 온도를 1도 빼서 18도로 낮췄야 했다. 130살 된 우리 집, 창문 틈새로 인색한 겨울바람이 술술 들어온다. 아이들은 애벌레처럼 침낭 속으로 몸을 웅크려 넣고 거실 벽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갈 때마다 차가웠던 발가락이 사르르 녹는다. 찡하게 시렸던 콧등도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얼굴만 한 굵은 장작이 검게 반쪽이 되어갈수록 따스한 온기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오랫동안 머물렀다. 세상에는 이런 장작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몫을 기꺼이 빼서 다른 사람에게 더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오늘도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해야겠다.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덴 것처럼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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