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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Aug 27. 2021

아이들은 날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처음으로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3월이었다. 

지도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아주 아담하고 조그마한 1층 건물 학교였다. 코로나로 학교가 봉쇄되면서 학교 안에는 몇몇 선생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짧은 금발의 젊은 여자 교장선생님께서 정문에서부터 반갑게 자기를 소개해 주셨다. 아이들이 공부할 교실과 학교 마당이며 담임선생님과 만나서 인사 나누는 것 까지 일일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준비물이 어떻게 되죠? 과목별 노트나 책이나..”

다 큰 아이들이 학교 가는데 이제야 준비물을 물어보다니 조금 한심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홈스쿨링만 했던 나는 정말 준비물을 몰랐다. 

“준비물은 없어요. 책이나 노트, 연필 등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학급마다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단지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금방 적응하기를 바라요.”

활짝 웃어주시는 교장선생님을 보니 난 이미 적응이 끝났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낼 부모로서의 적응 말이다. 물론 내 적응이 아이들 적응보다 백배 쉽겠지만. 그날 그렇게 학교 방문은 20분 만에 끝났다. 


여기 시골 학교 전교생은 다 합쳐서 90명이다. 둘째 딸 선생님은 우리 집 들어오기 바로 전 마게렛 스트리트에 살고 막내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 집 옆 누워크 스트리트에, 체육선생님은 인베리 스트리트라고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다. 첫째 딸의 미술 선생님은 자기 반 친구 에밀리의 이모란다. 유치원 선생님 중 한 분은 둘째 딸 학급 동무인 샬럿의 고모다. 모두가 이웃이고 모두가 친척인 이 마을이 왠지 매력적이다.


내 어릴 적 학교 다녔을 때가 겹쳐 떠오른다. 매일 내 등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큰 학교 가방을 메고 다녔다.  

부피만큼이나 무거웠고 무엇보다도 흔들리던 가방 안에서 김치 국물이 책과 비빔이 되는 날에는 책들을 빨아서 창가에 말려두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나름대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비누까지 사용하며 열심히 비벼댔다. 벌겋게 물든 종이 때가 나올 때까지 하지만 잘 말렸어도 항상 문제는 생겼다. 엉켜 붙은 페이지들이 떡이 되는 순간, 낱장을 일일이 갈라놓으려다 결국 나의 책들은 너덜너덜 걸레로 변해갔다. 


"도시락으로 김치 싸 줄까?"

"아니오!"

두 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나섰다. 


학교 교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도시락통과 물통이 든 가방만 매고 휘적휘적 걸어가다가 총총 발걸음이 빨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창문에서 바라봤다. 어깨가 가벼워 저러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우리 딸과 아들 같은 또래 아이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누워 있다. 아이티의 지진과 홍수로부터 집을 잃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아이들, 오늘은 카불 공항 폭탄테러로 최소 90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정말 가슴이 무너진다. 왜 이런 아이들은 날지 못하는 걸까? 누가 이 아이들의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는가?


이번 연도 초 게시판에 붙여 있던 글이 생각난다. 

우리 동네 게시판에 실린 문구


코로나 봉쇄로 인해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면서 일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일자리를 잃었거나 상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 창고를 만들었으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시라는 문구였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음식이나 휴지 등을 사재기하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이곳 동네 어르신 한분이 시작한 이 사마리아 운동은 창고의 물건이 나가는 족족 꽉꽉 채워져 갔다. 가진 자는 넘치지 않을 만큼 없는 자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 서로가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이 지구에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이 훨훨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날아가면서 새랑 누가 빠르나 경주도 해보고 푸르른 나무와 오손도손 대화도 나누고 뽀송뽀송한 구름에 잠깐 쉬었다가 햇빛에 무한한 충전을 받으면서 모든 아이들이 힘차게 마음껏 날개를 펴는 그날이 오도록 어른 1인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무엇보다도 아프가니스탄과 아이티에 하늘 아버지의 긍휼과 은혜를 단비처럼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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