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랄라 유사프자이
"엄마, 나처럼 생긴 애가 우리 반에 있어"
루카스도 나처럼 반가웠을까?
짐바브웨이에서 온 타디와나세(Tadiwanashe)를 만났다.
나름대로 '만세'를 생각하며 끝말잇기식으로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외우려고 며칠 동안 중얼거렸다.
처음 학교 앞에서 만난 타디와나세의 엄마 치에즈는 나를 보자마자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은 내가 처음 이라면서 앉자마자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 지리적으로 머나먼 두 대륙의 엄마가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건 영국이기에 가능했을거다. 치에즈에게는 5명의 자녀가 있다. 타디와나세는 그 중 막내였다.
2019년 치에즈는 혼자서 멀고도 낯선 스코틀랜드땅을 찾았다. 12시간 양로원에서 힘들게 간호하다 텅빈 집으로 들어가는게 고통이었단다. 무섭게도 고요한 밤. 눈물을 삼키고 가족을 생각하며 웅크렸던 밤. 긴긴 6개월의 밤이 지나고서야 기적이 찾아왔다. 영국은 남편과 5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비자를 건네주었다. 태양열 전등 아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거나 물을 길러 고된 길을 걷지 않고도 24시간의 전기와 수도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자기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영국에 감사하다는 말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타디와나세 가족은 난민으로 영국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최근 진천에 도착한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들어온 아프간 378명(가족 포함)이 생각났다.
미군의 철수 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약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했다. 탈레반을 피해 속절없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온 이들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아니 빼앗겼다고 적는 것이 옳겠다. 희망이라는 단어 마자 짓밟힌 고국을 떠나온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겪었던 사람들은 종종 극단적으로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희망을 완전히 잃고 산산조각이 나거나
또 다른 하나는 너무 회복력이 강해서 아무도 당신을 깨트릴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난민입니다> 책 중에서
2012년 10월, 여성교육을 금지하던 탈레반에게 소녀 교육과 평화를 위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 한 소녀가 있었다. 집으로 가는 통학버스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말랄라 유사프자이. 누구도 그녀를 깨트리거나 무너트릴 순 없었다. 17세의 나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여성인권운동가. 그 당시 그녀는 고작 만 15살이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1246680
영국은 말랄라의 부상후 회복을 도왔고 가족 모두를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영국은 그녀의 가족뿐만 아니라 저번 달 8월 23일 기준으로 13,146명의 아프간 난민을 수용했다. 앞으로도 여성과 아동 및 탈레반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특정 종교와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2만 명을 수용할 거라는 계획 또한 발표했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우리 한국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거다.
한때 6.25 전쟁으로 남북한에서 수백 만의 난민이 발생했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전쟁고아가 되었던 시절.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유럽을 거쳐 간 북한 고아들이 만명을 넘었다. (그중 남한 고아도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땅 한국을 돕겠다고 피가 섞이지도 않은 다른모양을 한 외국으로부터 후원이 들어왔고 유엔은 부산에 거대한 난민촌을 운영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설 수 있었던 것도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탈레반은 저를 침묵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파키스탄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제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누군가가 "당신의 계획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소녀들이 교육의 권리를 갖도록 계속 싸울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파키스탄에서 활동을 시작했었고 새 집이 된 이곳에서도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난민입니다> 책 중에서
치에즈는 모두가 꺼려하는 밤 근무가 잦고 일주일마다 교대가 계속 바꿔서 약속을 잡거나 가족끼리 어디 가는 것조차 계획하기 어렵다고 했다. 영국은 이런 치에즈의 노동을 귀하고 값지게 여겨 비자를 내줬을 것이다. 그녀의 고된 노동과 수고에 영국에 사는 한 사람으로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타디와나세와 우리 아들 루카스가 파란색 빨간색 알록달록한 블록을 높이 쌓았다 무너트리면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키득키득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크게 웃는다. 이름조차 부르기 어려웠던 타디와나세와 엄마 치에즈를 알아 갈수록 그들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이 되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말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투쟁 또한 더 이상 머나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폭력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던 아프가니스탄 아이들. 그들에게도 함박이라는 나무에 저마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진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나길 바란다.
저는 <We are displaced> by Yousafzai 원서를 읽고 번역했기에 문학동네에서 발간된 <우리는 난민입니다>와 인용문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