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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같은 놈, 틱에 물렸다.

by 제스혜영

스코틀랜드 여름이 되면 종종 요주의 벌레로 진드기(Tick)가 등장한다. 동네 약국 앞유리창엔 진드기 전단지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다. 진드기에 물리면 재빨리 제거하라는 경고문이다. 사람들은 풀이 길게 늘어져 있는 풀밭이나 숲길에서 틱을 만날 수 있으니 반바지를 입지 말고 발가락 나오는 샌들도 신지 말라고 권했다. 틱을 빨리 떼지 않아서 근육통과 두통으로 한 달간 고생했다는 친구의 고충도 들었던지라 산책하러 갈 때면 나름대로 내 모양새를 살피곤 했다. 그러다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진드기에 물렸다.


그날은 반바지를 입은 것도 아니고 샌들을 신지도 않았었다. 수풀을 파헤치며 산책을 하거나 높게 자란 풀밭 위로 앉지도 않았었다. 미국에서 놀러 온 한 가족이 친구집에 머물렀었고 그들이 떠나던 날, 그 가족이 썼던 침대보와 수건을 다 빨고 널기 위해 친구집 정원에 발을 디뎠을 뿐이었다. 진드기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진드기는 풀잎으로 기어 올라 동물이나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이빨을 들이밀고 확 물어버린다. 그것도 아무 데나 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선호하는 부위가 따로 있단다. 나의 경우는 다리 뒷살이었다. 무릎 뒷부분이 따갑기도 간지럽기도 해서 긁다 보니 오렌지색 벌레가 딱 달라붙어 있었다. 달라붙은 모양새를 보아하니 순간 진드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그놈에 대해 들었던 게 많았던지라 일단 손대지 않기로 했다.


먼저 클리닉에 전화를 걸었다. 클리닉에선 약국에서 도와줄 거라며 약국을 가라고 했다. 동네 약국에 전화를 걸었더니 집에 있는 구군가에게 도움을 구해 보라고 권했다. 그때 집에 있던 누군가는 9살 난 우리 아들뿐이었다. 그러자 약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도와줄 Someone을 찾으세요."

오전 11시쯤, 일을 안 하고 집에 있을 Someone을 찾기 위해 핸드폰 메시지를 뒤졌다. 그리고 다급한 마음으로 친구 두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는 사이, 아까만 해도 코딱지만 했던 진드기가 약지 손톱만큼 커져 있었다. 쏙쏙 내 피를 빨아먹는 느낌이 전기처럼 찌릿찌릿 온몸으로 저려왔다. 엉겁결에 몸을 소스라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흡혈귀 같은 놈!"

소름이 돋았다. 아홉 살 난 아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동그란 눈을 끔벅거렸다.


10분 후, 진드기를 제거해 본 적이 없다던 한 친구가 핀셋을 들고 달려왔다. 그새 진드기 제거방법을 유튜브로 찾아봤단다. 진드기 제거 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진드기가 파묻고 있는 얼굴과 주둥이까지 모조리 빼내야 된다는 것이다. 친구는 핀셋으로 진드기를 똑바로 세우고 비틀림 없이 빼려고 가까스로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진드기를 떼어낸 경험이 있는 친구의 남편과 실시간 통화를 하면서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이래저래 시도하다 마침내 통통한 배를 떼어냈다. 그리고 새까만 얼굴이 내 살점과 함께 뜯겨 나왔다. 그날, 진드기와의 사투는 피흘림으로 마무리 됐다. 진드기가 빠져나간 자리가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제거되었다는 통쾌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느 때처럼 정원에서 잡초를 뽑았다. 그러다 팔꿈치가 따끔거린다거나 발가락이 간지러우면 온몸이 움찔거리더니 번개처럼 두 눈이 그곳을 쏘아보았다. 진드기일까? 놀랍게도 머리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부쩍 달라진 내 모습에 그저 실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민감하다가 곧 무뎌지겠지. 기럭지가 길고 구슬만 한 거미를 처음 봤을 때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그 거미가 변기의자나 천장에서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날 때면 여전히 어깻죽지가 쭉 올라간다. 하지만 기절초풍할만한 고함은 더 이상 지르지 않는다.

혹여나 내년 여름, 그놈의 흡혈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호들갑 세기가 조금은 약해지지 않을까. 특히 10살 될 아들 앞에선 더더욱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싶다.


pKXOoKJoSCmDBiukvqggkA.jpg 동네 약국에 붙어있는 진드기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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