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
나는 스코틀랜드, Tillicoultry(틸리쿠트리)라는 마을에 산다. 생소한 마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데만 두 달이 걸렸다. 사람들은 틸리쿠트리를 줄여서 '틸리'라고 부른다. 사천 명 남짓이 사는 조그만 마을. 이곳에서 19년 전 어름어름 한국말로 나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했던 영국 남자와 세 아이이랑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이 결혼식 때 나를 위해 준비했다며 깜짝 노래를 불렀었다. 남진의 '저 퓨런 초윈 우에~' 이게 예언송이었을까. 높게 솟은 파란 하늘과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이 출렁이는 곳. 이곳이 내가 사는 틸리 마을이다.
스코틀랜드로 이사 온 지 어느덧 4 년이 되었고 브런치에서 글을 쓴 지도 어느새 4년이 되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글을 쓰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먼저 보이는 걸 썼다. 우리 집 마당으로 종종 마실 나오는 로빈을. 그는 오렌지빛 턱시도를 찬란하게 뽐내며 총총 걸어 다닌다. 똥에 관한 이야기도 안 쓸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에 널린 게 똥이니까. 말, 사슴, 토끼, 소, 두더지까지. 똥보고 동물 맞추기 게임이 닌텐도보다 더 재밌더랬다. 들리는 걸 썼다. 틸리에 봄이 왔다는 소리를. 엄마를 애타게 찾는 소리. '빠아아아아'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새끼양의 울음소리였다. '치르치르르' 높낮이가 다른 새들의 합창소리 또한 빠트릴 수가 없다. 맛있는 걸 썼다. 산책하다 발견한 보물 같은 고사리를. 알고 보니 고사리는 스코틀랜드 천지에 깔려있었다. 여행겸 놀러 온 친구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산고사리는 나에게 어깨만치 올라온 잡초에 불과했다. 세련된 지팡이처럼 또르르 말린 고사리를 고슬고슬 볶아 비빔밥으로 먹고 부르르 끓여 육개장으로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고사리는 나를 종종 고향에 데려다주었다. 코가 마시는 걸 썼다. 바닷가에서 뜯어 온 다시마 냄새를. 세인트 모넌스라는 어촌마을에 가면 집채만 한 바위 밑으로 굵은 다시마가 머리카락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 한 묶음의 다시마 카락을 가위로 뚝뚝 잘랐다. 바드득 바드득 정성껏 씻어 빨랫줄에 널었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한 게 마치 어렸을 적 자갈치 시장에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느끼는 걸 썼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느낌이란 한 켤레의 양말처럼 마음이랑 같이 따라다녔으니까. 행여나 내 마음이 들키기라도 할까 봐 평소에도 조심조심했던 내가 모난 마음을 세상에 꺼내 놓는다는 건 차마 못할 짓이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치부처럼 감춰뒀던 곰팡이 같았던 부분을 세상에 내뱉었던 날. 나는 알몸이 된 것처럼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참으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찬바람이라도 불 것 같은 댓글에 용감. 위로. 응원.이라는 단어가 달렸었다.
브런치는 나를 쓰게 만들었다. 무뎌졌던 오감을 살려내는 힘을 주었고 내 마음에 뭉그러졌던 부분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었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주었다. 이 모든 일은 글동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오래오래 쓰고 싶다. 틸리의 이야기를 어리숙한 나의 이야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를 웃고 우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게 내 꿈이자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