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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뽀리 Jul 04. 2024

신규공무원 발령받았습니다!

4학년 1학기


학교를 다니던 중 내가 발령받은 지자체의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행정복지센터로 출근하게 되었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 인터넷을 뒤져보며 대충 필요할 것 같은 준비물들을 챙기고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입은 채 집 문을 나섰다.


당시 나이가 24살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쭈뼛쭈뼛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가 염소마냥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사실 조금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낯설고 커다란 어른들의 세계에 갑자기 툭-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민원팀에 배치가 되었다.

이것저것 시스템 사용에 필요한 권한들을 받고, 옆에서는 사수가 업무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에 정신을 못 차렸다.


민원팀이라 점심도 30분씩 교대로 먹으며 업무를 봤고,

큰 소리를 내거나 안 되는 일들을 해달라고 떼를 쓰는 민원인들을 대할 때면 무섭고 도망가고 싶었다.

괜히 내가 나이가 어려서 더 막대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팀원들 모두 좋은 분들이라 모르는 걸 물어볼 때도 싫은 내색 없이 친절하게 잘 알려주셨고,

2~3개월 지나니 어느 정도 사무실의 분위기와 업무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행정복지센터 내에서 내부인사가 났다.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팀과 업무가 바뀌었다.

총무팀 서무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근무하는 직원과 기간제 근로자 등을 합치면 60여 명이나 되는 규모가 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제일 어린 막내가 서무로써 직원들의 협조를 구하며 업무를 하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자잘 자잘한 것들-프린터, 전화기가 고장 나거나 사무용품 등 물품이 떨어졌을 때마다

직원들은 나부터 찾았다.

파쇄기가 안된다며 불러서 가보니 전원이 꺼져있었다. 그때의 어이없음이란..!

커피믹스를 채워 넣지 못해 혼이 나기도 했었다.


서무가 '감히' 커피믹스를? 서무의 기본이 안되어있네.


손님 접대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커피를 맛있게 타고 과일을 예쁘게 깎을 줄 알아야 했다.

손님께 커피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내지 않았다고 불려 가 혼나기도 했다.


도저히 통일되지 않는 업무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되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서무의 '서'가 '잡다할 서'라며 잡무가 나의 업무라고 했다.


입사한 지 6개월이 되고 시보(인턴이나 실무수습과 비슷한 개념)에서 해제가 되었고,

공무원 조직 문화 중 '시보 떡 돌리기'라는 문화가 있었다.


하필 그즈음에 공무원 직원들이 민원인을 앞에 두고 간식을 먹는다며 민원성 글이 올라와 자체적으로 간식 금지령이 내려졌다.

시보 해제 기념 간식을 돌려야만 하는 나로서는 퍽이나 난감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고,

보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떡과 음료를 준비해 직원분들께 나눠드렸다.


축하해 주시는 분들도 물론 많았지만,

언제 간식을 주는지 기다리고 있었다며 왜 이렇게 늦게 주냐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어리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40도에 가까운 열이 떨어지질 않고 기침을 계속 해댔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폐렴에 걸린 것이었다.


출근을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하루하루 쌓이고 있을 업무들이 걱정이었다.

그래도 민원팀에 있을 때 같이 일하던 언니들, 친하게 지내던 다른 팀 직원들이 병문안을 와주었다.

현 소속이었던 총무팀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서운한 감정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원하기 하루 전,

총무팀에서 직원 두 명이 병문안을 왔다. 그래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했다.


팔에는 바늘을 꽂은 채 몸을 일으켜 맞이한 그들에게서 들은 말은.


'네가 없어서 업무대행자인 A가 일이 많고 힘들어한다. 빨리 퇴원하고 밀린 일 처리하라'였다.


1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말.


그날 병문안을 온 사람은 차석과 업무대행자 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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